공직선거법 개정안에 관한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이틀째 진행되면서 마냥 웃기만은 힘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몇 시간씩 토론을 진행하는 의원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생리적 현상’이다. 두 번째 필리버스터 타자로 오전 1시50분쯤부터 4시간 31분간 ‘찬성 토론’을 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언 도중 문희상 국회의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지난번에는 잠깐 화장실을 허락해줬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떠냐. 시간을 끌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자 문 의장은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해봤다”며 의사국장과 상의를 거쳐 3분을 허락했다. 김 의원은 화장실을 다녀와 토론을 계속했다.
다음 순서로 토론에 나선 권성동 한국당 의원도 ‘자연의 법칙’은 피하지 못했다. 그 역시 발언 도중 문 의장 대신 회의를 진행하는 주승용 국회 부의장에게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고 요청했다. 주 부의장은 처음에는 “(다음 차례인 민주당) 최인호 의원에게 예측 가능한 시간을 드려야 하는데 화장실을 보내드리는 것은…”이라며 난감해 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김종민 의원도 다녀왔다”고 하자 “빨리 다녀오시라”며 시간을 내줬다.
필리버스터 첫 타자였던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발언 시간이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기저귀를 착용하고 본회의장 단상에 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 의원은 졸지 않기 위해 발언 도중 사탕을 입에 무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필리버스터를 끝내고 페이스북에서 “토론 중 다음 순서가 민주당 의원 차례라는 메모를 받았다"며 "체력적으로는 더 오래 더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었지만, 시청률이 낮은 심야에 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게 하기 위해 발언을 멈췄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오후 9시50분쯤부터 이날 오전 1시49분까지 3시간59분 동안 발언했다.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인 본회의장은 대부분 좌석이 비어 있는 모습이다. 각 당은 조를 편성해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은 소속 상임위 별로 8∼9명씩 나눠 조를 짰다. 전날 ‘의원님 행동 요령’이란 제목의 공지도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공지에는 ‘23일 24시 이후 조별 대기, 비번 조 의원님은 귀가’ 등 내용이 담겼다. 24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이춘석·강병원·김영진·심기준·유승희 의원 등이 자리를 지켰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는 25일 자정 종료되므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관한 필리버스터는 그때까지만 이어질 예정이다. 문 의장과 주 부의장은 4시간씩 번갈아 가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