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생부·냉정한 할머니…신생아 버려 숨지게한 미혼모 선처

입력 2019-12-24 11:08 수정 2019-12-24 16:14

법원이 혼자 낳은 신생아를 골목길에 버려 숨지게 한 20대 미혼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생부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으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한 상황에서 혼자 출산한 점을 고려했다.

인천지법 형사14부(임정택 부장판사)는 24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25)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수강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양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는 분만 직후의 영아인 피해자를 유기해 숨지게 했다”며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씨가 미혼모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출산한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선처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생부로 생각되는 이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으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가족들로부터 비난받을 게 두려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출산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 중에도 보육 시설을 검색하고 실제로 보육 시설에 찾아간 점 등을 보면 계획적으로 유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미혼인 피고인이 출산 후 정신적 충격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 범행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생부에게 “임신했다”고 알렸으나 남성은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관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못한 A씨는 지난 3월 출산이 임박하자 인천에 있는 외할머니 집을 찾았다. 외할머니는 외출하고 없었고, 진통이 커지자 A씨는 집 화장실에서 혼자 남자아이를 낳았다.

밖에서 돌아온 외할머니는 “곧 네 삼촌이 올 텐데 삼촌이 알면 큰일 난다”며 “빨리 나가서 누구한테라도 이야기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A씨는 갓 태어난 아이를 담요로 감싸 안고 집 밖으로 나와 근처 주택가 화단에 아이를 두고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 걱정을 하던 A씨는 6시간 뒤 아이를 다시 찾아 동네 근처 보육시설에 데려갔다. 하지만 보육 시설은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아이를 혼자서 키울 자신이 없다는 생각 끝에 A씨는 다시 아이를 골목길에 두고 사라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 한 행인이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으나 아이는 저체온증으로 끝내 숨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며 “너무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기를 버렸다”고 진술했다.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A씨가 출산한 지 1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