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크리스마스 도발’ 가능성으로 북·미 간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무시해 관계 악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핵협상 책략이 어떻게 실패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 비핵화 협상을 두고 미국 내에선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뒤섞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협상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너무나 많은 요구사항을 내밀며 줄 수 없는 약속을 하면서 현 상황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특히 WP는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업무오찬을 취소하고 회담을 일찍 끝냄으로써 김 위원장을 무시한 게 하노이에서의 최대 실수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같은 전략은 부동산 거래를 마무리할 때는 잘 먹힐 수 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변덕스러운 독재자를 대할 때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WP는 또 “하노이에서의 무시가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 내부의 압박을 증가시켰을 수 있으며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수 있다”면서 “어느 쪽이든 김 위원장은 그 정상회담 이후 눈에 띄게 화가 나 보였고, (북미) 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무엇이 김 위원장을 실제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제시해온 ‘밝은 미래’라는 대가를 거론했지만 김 위원장에게 매력적인 도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WP는 “미국은 모든 것을 요구함으로써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위험을 무릅썼다”며 “보다 나은 관계 구축의 대가로 북한 핵무기 감축 및 방지를 추구하는 게 더 현실적인 목표가 됐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최소 2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WP는 지적했다.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거론했을 때 그 의미를 정확히 규정짓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은 이를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라고 해석했지만 북한은 핵 억지력 포기 전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을 거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실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이라고 WP는 전했다. 미국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이 약속 이후 훈련 규모는 줄었으나 일정 수준의 전투태세 유지를 위해 훈련을 완전히 중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생각차는 이후 대화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낳았다. 북한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는 대가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등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대화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며 앞으로의 협상에서 양보 문제는 양쪽 모두 ‘제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도 대북문제에 필수적인 중국의 협조를 구할 수 없는 한계를 초래한 것으로 지적됐다. 미·중 분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관계 개선을 할 여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대북제재를 상당히 완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무역전쟁이 결국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 약화를 가져왔다고 WP는 분석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