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 대통령과 통화 직후 ‘군사 원조’ 중단 명령

입력 2019-12-23 17:19 수정 2019-12-23 17:30

백악관 예산국 관료가 지난 7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 직후 국방부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보류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폭로됐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촉발한 당시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를 압박하며 군사 원조를 대가로 제시했다는 의혹은 하원 탄핵 조사의 핵심 쟁점이었다. ‘퀴드 프로 쿼’(대가성 거래) 의혹과 직결되는 내용이 공개됨에 따라 향후 상원 탄핵심판 과정에서 첨예한 공방이 예상된다.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은 22일(현지시간) 비영리 감시단체 공공청렴센터(CPI)가 입수한 문건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후 90분 정도 지나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당국자들은 국방부에 대(對)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동결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두 정상이 통화를 한 당일 트럼프 행정부 차원에서 대가성 거래 관련 움직임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해당 문건은 CPI가 미 정보자유법에 따라 국방부에 요청한 자료로 내부 이메일 등 총 146쪽 분량의 문서로 이뤄졌다.

문건에 따르면 OMB 소속 마이클 더피 국가원조프로그램 부국장은 두 정상의 통화 당일 국방부 회계 담당자인 일레인 맥커스커에게 ‘우크라이나 해외 원조’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더피 부국장은 “내가 받은 지침과 안보 원조 계획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원을 재검토하려는 행정부의 계획을 비춰 볼 때, 국방부는 이 기금에 대한 추가적인 의무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더피 부국장이 보낸 메일에는 “요구사항의 민감한 성격을 감안했을 때 당신이 이 정보를 알아야 할 이들에게만 국한해 정보를 제공한 일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발언도 포함됐다. 명령을 실제 수행할 이들 외에는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은 일을 치하한 것이다. CNN은 이와 관련해 “더피 부국장은 군사 원조 보류가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더피 부국장의 지난 6월 19일 메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기 한 달 전부터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문제에 사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그는 해당 메일에 ‘미 의회가 총 2억5000만 달러(약 2908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승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첨부하고 “대통령이 이 자금의 집행에 대해 물었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당시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금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이 돈은 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맥커스커는 이후 지난 9월 5일 더피 부국장에게 메일을 보내 우크라이나 원조금 집행이 회계연도 내에 처리되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더피 부국장은 같은 달 11일 답장을 보내 우크라이나 원조 중단 조치가 풀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맥커스터가 다시 원조 보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게 돼 다행”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즉각 공세에 나섰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더피는 누구로부터 명령을 받았고, 왜 그렇게 했나”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을까, 아니면 믹 멀베이니(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였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의 사람들이 선서를 하고 증언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내달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상원 탄핵심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증언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