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다고 이웃 고를 권리도 있나요?” 청년주택 주민반대에 몸살

입력 2019-12-24 00:15
“집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주민이 아니다!”
“청년들도 주민과 더불어 살고 싶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서대문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연희동 사회주택을 둘러싼 주민들의 반대가 지속되면서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 10월 공사에 들어가 이달 중에는 입주자 모집이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첫 삽을 뜨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하 민달팽이)는 23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들은 청년 공공주택 님비를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연대발언자로 나선 김영민 청년 유니온 사무차장은 “집을 소유했다고 옆집에 누가 살지까지 결정할 권리는 없다”며 “청년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음 놓고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미래당 우인철 대변인 역시 “주민들이 연희동은 슬럼화 된 지역이 아닌데 왜 청년주택을 여기다 짓느냐고 반대하고 있다”며 “그러면 청년주택은 슬럼화 된 지역에만 세워져야 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청년주택으로 공급될 예정이었던 연희동 주택

앞서 민달팽이는 지난 8월 ‘빈집활용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공급사업 공모’에 선정돼 연희동에 사회주택을 공급할 예정이었다. 1인 가구와 청년 등 주거약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 언론에서 이 사회주택을 성소수자들을 위한 ‘퀴어하우스’라고 잘못 보도하면서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졌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반대 민원을 넣고 서명운동을 하는 등 실력행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남남 커플이 껴안고 돌아다니면 초등학생에게 에이즈 조심하라고 어떻게 교육하느냐”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반대가 거세지자 사업은 일시 중단됐다.

연희동 주민이 올린 반대 민원

그러나 “성소수자가 입주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민달팽이는 “청년주택은 주거약자에게 열려있다는 취지로 인터뷰한 내용이 ‘성소수자’ 전용인 것처럼 기사가 잘못 나가면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즉각 해명 기사를 냈다. 사업 특성상 입주자의 경제수준(월 300만원, 재산 2억 이하)을 확인할 뿐 개인의 성적 지향을 묻는 절차는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주민들의 반대 민원이 계속돼 사업 진행이 힘들다는 게 단체의 입장이다. 민달팽이 권지웅 이사는 “주민들이 이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초등학교의 교육 환경을 해칠 것이라 공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며 “특정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해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억측이다. 이는 특정 시민을 배제하고 모욕하는 폭력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연희동 사회주택을 둘러싼 갈등은) 소유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네에서 함께 살 권리를 허락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주민 반대의 이유는 집값 때문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민 사무차장은 “청년주택이 들어오면 우범지대가 된다고 말하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주민들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결국 부동산과 집값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 연희동 주민이라고 밝힌 한 대학생도 “청년 들어오면 동네가 모텔촌으로 변한다는 소리를 주민들에게 들었다”며 “사실 집값이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 아니겠나. 청년 탓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연희동 주민들은 “(민달팽이가)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연희동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가 몰리는 곳이 아닌 실거주자가 많은 동네이기 때문에 집값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연희동 사회주택 비상대책위원회 김모 대표는 “집값 하락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세금이 함부로 쓰여서 항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주택이 26억원에 매매됐는데 26명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세금으로 한 명당 최소한 1억씩 지원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예산을 아이들 돌봄 시스템에 썼으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주택이 허름한 집도 아닌데 낙후된 집을 리모델링해 청년에게 준다고 홍보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성 소수자 주택 논란에 대해서는 “처음 잘못된 기사로 잘못 이해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것 때문에 (사업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 같아 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민과 협동조합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민달팽이가) 이런 기자회견을 하는 것 자체가 주민 입장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반면, 민달팽이 측은 24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공공주택 반대 지역을 순회하며 1인시위를 할 계획이다.

이홍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