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잡힌 아파트 세금 안 내고 증여받은 A씨…빚은 부모가 갚았다

입력 2019-12-23 17:01
국세청, 고가 부동산 관련 257건 세무조사 착수
‘부채’ ‘현금 증여’ 활용한 편법 증여 판쳐

부채 활용해 편법 증여한 A씨 사례. 자료=국세청

서울에 사는 A씨는 아버지로부터 고가의 아파트를 증여받았다. 다만 아파트에 물려 있는 근저당을 승계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빚까지 포함해 받다 보니 시세차익이 발생하지 않아 증여세 대상에서 빠졌다. 아버지가 빌린 돈을 대신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여 이후에 근저당을 풀기 위해 빚을 갚은 사람은 A씨의 아버지였다. A씨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가 아파트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B씨는 아들과 손주에게 주식과 임야를 매입하도록 했다. 손주의 나이는 올해 11살이다. 별도 소득이 없는 초등학생이 갑자기 주식·임야의 주인이 된 것이다. 수상히 여긴 국세청에서 조사했더니, B씨로부터 거액의 현금 증여가 있었다.

고가의 부동산을 편법으로 증여하는 일이 끊이지 않자 국세청이 다시 칼을 빼들었다. 지난달 고가 부동산 탈루 혐의로 224명을 세무조사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추가 조사에 나선 것이다. 강화된 대출 규제를 회피하려고 고가 아파트 등을 증여 받으면서 차입금·보증금을 승계하는 척 세금을 탈루하는 수법이 상당수다.

국세청은 별다른 소득도 없이 고가 주택을 취득한 사례 등 257건을 세무조사한다고 23일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한 서울지역 의심 사례 531명 중 탈세 혐의가 짙은 101명이 포함됐다.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조사해 부동산 매입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한 128명과 법인 28곳도 포함됐다.

국세청은 부동산을 구입하며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와 매입자의 재무상태를 비교 분석하는 식으로 혐의 대상을 좁혔다. A씨처럼 무직인 자녀가 부채가 포함된 고가 부동산을 증여받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빚과 함께 집을 받았는데, 이자를 꼬박꼬박 내거나 채무가 정리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노정석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부동산 편법 증여 사례를 보면 일반적으로 취득액 대비 부채의 비율이 3대 7 정도 된다”며 “이런 경우 금융거래내역 확인 등을 통해 차입금 흐름을 중점적으로 검증해본다”고 설명했다.

B씨처럼 아예 현금을 직접 증여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부모에게 현금을 받아 부동산·주식을 사면서 차용증을 쓰거나 이자를 주지 않는 식으로 편법 증여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취득한 부동산을 임대하면서 임대소득을 누락한 이들도 있었다. 노 국장은 “탈루 혐의자는 예외 없이 자금 출처를 전수 분석하고 추적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