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후 진술 증거능력 인정 여부’ 정경심 재판 영향 주목

입력 2019-12-23 13:07
이미지=픽사베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유통센터(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수억원을 전달했던 브로커가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이후, 수사기관이 항소심에서 증인신문을 하기로 예정돼 있던 증인을 일방적으로 소환해 진술조서를 작성했다면 이 내용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앞서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의 공판에서 재판부가 직접 언급해 주목받았다. 이번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정경심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이씨는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에게 접근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통해 도와주겠다’며 2007년 8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사업 인허가 청탁 비용 명목으로 5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사건의 쟁점은 이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돈을 받은 것인지, 독자적인 로비 명목으로 받은 것인지 여부였다. 1심은 이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건네지는 돈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한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를 ‘단순 전달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항소하며 항소이유서에 ‘이 전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적었다. 이후 검사는 이 전 대표를 첫번째 항소심 공판기일이 열리기 하루 전 참고인으로 소환해 5번째 검찰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이 전 대표는 항소심 법정에서도 검찰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로 이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2심의 판단은 유죄였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2007년 12월 대선 이후에 최 전 위원장과 무관하게 로비 명목으로 4억원을 받았다고 보고 징역 1년 6개월, 추징금 4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이 전 대표를 별도로 소환해 작성한 5번째 검찰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정 증언은 증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증거로 인정했다.

대법원으로 올라간 사건은 다시 한번 결과가 뒤집혔다. 대법원은 이 전 대표가 항소심 법정에 나와 했던 진술도 이씨에 대한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1심에서 피고인 이씨에 대해 무죄판결이 선고돼 검사가 항소한 후, 수사 기관이 항소심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사 기관에 소환해 불리한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를 작성한 경우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인정한다면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검사가 수사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된다”며 “당사자주의,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이 전 대표의 법정진술은 그의 4번째 진술조서, 피고인의 검찰 자백진술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모순된다”며 “이 전 대표가 항소심 재판 이전에 검찰에 소환돼서 진술조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영향을 받아 진술을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정 교수의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새로 나온 점을 언급하며 “검찰 측은 증거 제출시 참고해달라”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는 판례 주요부분을 읽으며 “수사기관의 권한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만드는 것”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파이시티 관련 대법원 판결은 1심 무죄 판결, 항소심에서 증인신문이 예정된 사람 등에 한정해서 판단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의 취지를 개별 재판부가 얼마나 확대해서 볼지는 해석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기소 후 피고인을 다시 불러 조사한 진술조서가 증거능력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폐기하지 않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