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TV풍경 찍어서 카톡 프사하는 엄마, 좀 짠해”

입력 2019-12-23 04:00


나이가 지긋한 엄마,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공통점이라는 글을 언젠가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본 아름다운 풍경 일색이더군요. 해외여행, 등산 등 여행 사진이 올라오는 경우도 자주 있고요. 그런데 이런 평범한 자기소개 사진마저 부럽다고 한 네티즌이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 남들처럼 여행을 가지 못하는 엄마가 계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푸념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막장 커뮤니티로 치부되는 ‘야갤’에서 얼마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네티즌은 지난 18일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야갤)에 ‘울 엄마 ㄹㅇ..이건 좀 짠함’이라며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 옆으로 폭포가 흐르는 어느 고요한 숲속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함께요. 화질이 흐릿한 이 사진은 엄마가 산에 가서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TV 화면을 찍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집에 놀러 갈 돈이 없어서 가끔 티비에 예쁜 풍경 나오면 티비 모니터 사진 찍어서 카톡 프사로 해둔다”고 엄마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조롱과 비방이 난무하는 커뮤니티 특성상 좋지 않은 댓글도 없지 않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글을 보고 울었다” “가슴 아프다”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이 글에는 순식간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글쓴이는 많은 네티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남겼습니다. 카카오톡 메신저로 연락이 닿은 몇몇은 그에게 후원금을 주었고, 또 누구는 치킨이나 케이크 등 먹을 것을 선물했습니다. 소형 마사지기를 선물한 이도 있었습니다. 모두들 “어머니께 효도하라”는 말을 남기면서요.



그는 쏟아진 온정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항상 감사하고 저도 어려운 사람이 나타나면 베푸는 삶의 자세를 가지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익명을 빌려 저에게 큰 도움 주신 분들 덕에 항상 세상은 아직 따듯하다고 느낀다”며 “여러분들 덕에 오래간만에 어머니 아버지가 웃으시는 모습을 봤다.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열심히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오붓하게 보쌈을 시켜 나눠 먹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패드립(패륜적 농담)마저 올라오는 야갤에서의 벌어진 일이라며 이를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사정으로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을 깎아내릴 권리는 우리에겐 없습니다. 모르는 이들이 전해준 온기에 오열했다는 ‘흙수저’ 야갤러(야구 갤러리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의 앞으로의 인생을 기자도 응원해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