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성희롱·따돌림·보복·신고’…올해 5대 직장갑질 키워드

입력 2019-12-22 16:13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고용노동청에 가서 상담을 받은 뒤 여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상담 이유는 사장에게 당한 ‘직장 갑질’이었다. 사용하지 못한 휴가에 대해 얘기하던 중 사장은 갑자기 일어나 “시X, 사장이 우습냐”면서 본인 자리 주변의 물건을 차례로 집어던졌다. 테이블 위에 있던 화분은 사장의 발에 채여 산산조각이 났다.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린 그의 욕설은 바깥에 있는 직원들에게도 들릴 정도로 컸다. 그러나 A씨가 상담에서 받은 답변은 “대표자가 가해자라면 (신고를 해도) 실효가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직장 갑질’ 제보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폭언’ ‘성희롱’ ‘보복’ ‘따돌림’ ‘신고’를 올해 5대 ‘직장갑질 키워드’로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폭언과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거나 공론화해도 보복이나 따돌림 등 2차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게 드러난 결과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 즉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런 처벌이 시행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괴롭힘을 참고 주변 직원들도 이를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나마 ‘보복’ 행위에는 처벌 조항이 있지만 정작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는 없는 것도 피해자를 입다물게 하는 원인이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위반 신고를 받는 사람이 사용자로 되어 있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가 사용자이거나 그 친족일 경우 실질적으로 신고가 불가능하거나 무력할 수밖에 없다. 법 자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들이 마지막 기댈 곳인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법의 한계만을 강조하는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으로 3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재능기부자 140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속담을 설문조사한 결과 ‘언덕은 내려다보더라도 사람은 내려보지 말라’를 선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직장 내의 권력관계를 악용해 함께 일하는 동료나 직원을 아랫사람 취급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