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일용직 광주 모텔 방화, “초라하게 살고 싶지 않아” 횡설수설

입력 2019-12-22 15:51 수정 2019-12-22 16:33
단잠 빠진 투숙객들 휴일 새벽 아수라장
2명 숨지는 등 33명 사상


신변을 비관한 30대 남자가 휴일 새벽 라이터로 자신이 묵던 모텔 객실에 불을 질러 2명이 숨지는 등 33명의 사상자를 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2일 새벽 5시45분쯤 광주 두암동 한 모텔에서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났다. 이 불로 모텔이 불길에 휩싸여 투숙객 50여명 중 2명이 숨지고 31명이 유독가스를 마시거나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중상 8명, 심정지 2명, 경상 22명 등으로 이중 14명이 심폐소생술을 받았거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응급환자로 파악됐다. 불은 소방당국에 의해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3층 객실에서 시작된 불이 모텔 건물 전체로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휴일 새벽 연말 송년회 등을 마치고 깊은 단잠에 빠진 투숙객들이 화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피해가 컸다. 4~5층의 투숙객들은 연기가 가득 차자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등 탈출을 시도하다가 크게 다쳤다. 중상자와 부상자는 현재 인근 병원 8곳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 불이 난 모텔은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1074㎡로 32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출동한 경찰은 3층 객실에 라이터로 불을 지르고 달아난 혐의(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로 김모(39)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일용직 노동을 하는 김씨는 경찰에서 “더 이상 초라하게 살고 싶지 않아 죽으려고 불을 질렀다”고 횡설수설하는 등 방화경위에 대해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22일 0시쯤 혼자 투숙했다가 5시간여만인 이날 새벽 5시45분쯤 3층 객실에 있던 베개에 불을 붙인 후 달아났다. 직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불길이 쉽게 달아오르도록 화장지를 방안에 풀어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CCTV 영상과 현장상황 등을 근거로 김씨가 묵은 방에서만 불이 급속히 번진 점 등을 들어 방화에 무게를 두고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발화지점인 3층 김씨 투숙 객실의 침대와 가구 등이 모두 불에 탄 사실 등을 토대로 김씨의 행방을 뒤쫓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씨를 검거했다. 인근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는 김씨는 불을 지르고 모텔을 황급히 빠져나갔지만 깜박 두고 온 가방 등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가 매케한 유독연기와 함께 화상을 입었다. 이후 모텔에서 출동한 소방관 등에 의해 가장 먼저 구조돼 병원에 후송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가 자신의 경제적 처지를 비관해 불을 질렀다가 크게 번지자 깜짝 놀라 무작정 달아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 등 소방장비 48대와 267명의 인력을 동원해 진화·인명구조 작업을 벌였다. 불이 난 모텔건물은 1997년 5월 숙박업소 승인을 받아 영업을 해온 노후건물이다. 3급 특정 소방대상물로 스프링클러와 옥내소화전을 설치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가 병원 치료를 마치는대로 ‘묻지마 방화’ 등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