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유럽연합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은 다음 달 31일 브렉시트를 발효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하원은 현지시각으로 20일 하원에 상정된 EU 탈퇴협정 법안(WAB)을 2차 독회(법안의 전반적 취지에 대한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날 투표 결과 찬성 358표, 반대 234표로 124표 차로 법안이 가결됐다.
이는 사실상 다음 달 31일 브렉시트를 이행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을 지지한 것이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지난 12일 총선에서 압도적인 의회 과반 지위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WAB는 이변 없이 하원 제2독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더 큰 표차를 기록하며 통과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영국의 법안 심사과정은 3독회제를 기본으로 한다. 제2독회를 통과했다는 것은 하원이 법안의 전반적 원칙을 승인했음을 시사한다. 하원은 표결 직후 별도 의사일정 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하원은 크리스마스 휴회기를 보낸 뒤 내년 1월7일~9일 EU 탈퇴협정 법안에 대한 추가 토론을 펼치게 된다.
위원회 단계에서의 상세한 심사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제3독회를 끝내고 의결이 되면 하원을 최종 통과하게 된다. 이후 상원을 거쳐 ‘여왕재가’를 얻으면 정식 법률로 효력을 가진다. 영국은 이에 따라 내년 1월 31일 예정대로 브렉시트를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EU 탈퇴협정 법안은 영국과 EU 간 합의한 탈퇴협정(국제조약)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 내부적으로 필요한 각종 시행법(국내법)을 말한다. 기존 EU 회원국으로서의 법률 등을 영국 국내 법률로 대체하고, 전환(이행)기간, 상대국 주민의 거주 권한, 재정분담금 등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법적 효력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EU 탈퇴협정 법안이 하원 제2독회 관문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존슨 총리는 당초 브렉시트 시한인 10월 31일을 앞두고 EU와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에 도달한 뒤 이를 토대로 한 EU 탈퇴협정 법안을 하원에 내놨다. 법안은 제2독회 표결에서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통과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시한 이전에 법안을 사흘 내 신속 처리하기 위한 의사일정 계획안(programme motion)이 부결되자 존슨 총리는 법안 상정을 중단하고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EU에 요청했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조기 총선 카드가 성공, 보수당이 하원에서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하자 전날 다시 EU 탈퇴협정 법안을 내놨다.
새로 내놓은 법안은 내년 말까지로 설정된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고, 기존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례를 영국 대법원은 물론 하급법원에서도 뒤집을 수 있도록 했다. 반면 노동당 내 브렉시트 지지자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기존 법안에 담았던 노동권 보호 조항은 삭제했다. 정부는 대신 별도 법안에서 이를 다루겠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EU와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의 목표를 담은 성명을 의회에서 승인받도록 하고, 각료들이 협상 내용에 대해 의원들에게 업데이트를 제공하도록 한 조항도 삭제됐다.
존슨 총리는 표결에 앞서 “이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다. 탈퇴와 잔류라는 낡은 딱지를 데야 한다”며 “법안은 1월 31일 우리의 탈퇴를 보장한다. 이 시점에서 브렉시트를 완수하고 끝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지난 3년간 유감스러운 이야기를 끝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EU와의 야심 찬 자유무역협정을 이한 길을 닦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가결 직후 “영국이 브렉시트 완수를 위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