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신문지에 싼 5000만원 몰래 놓고 가… 편지 한 장만

입력 2019-12-20 18:22 수정 2019-12-21 04:22
'나눔천사'가 보내온 편지와 돈봉투.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내년에는 우리 어르신들이 올해보다 덜 고독하고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 누군가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는 신문지에 꽁꽁 싼 돈을 편지와 함께 몰래 두고 갔습니다.

그가 기부한 돈은 1년 동안 적금을 부어 모은 ‘5054만6420원’입니다. 10원짜리 한 닢까지 기부한 것을 보니 이자까지 빠뜨리지 않고 보내온 모양입니다.

이 익명의 기부자가 돈을 보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경남모금회 관계자들은 이름도 모르는 이 기부자를 ‘나눔천사’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나눔천사'가 보내온 5054만6420원과 편지 =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나눔천사의 기부는 작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1월 2억6400만원과 12월 5534만8730원 등 3억1934만8730원을 기부했습니다. 올해는 지난 5월 진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사고 지원을 위해 500만원을, 겨울을 맞은 12월 5000만원 가량을 또 기부해왔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동모금회에 보내온 성금은 총 3억7500여만원에 달합니다.

'나눔천사'가 보내온 편지 =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이 기부자는 매번 손으로 쓴 편지와 함께 돈을 보내왔습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쓴 편지에는 “가난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중증 장애 노인과 독거 노인의 긴급 의료비로 쓰이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편지 말미에는 “내년에는 우리 어르신들이 올해보다 더 건강하시고 덜 고독하고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내년 연말에 뵙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내년에도 후원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경남모금회 이미숙 대리는 2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예전에도 기부자께서 어르신들 의료비로 사용되길 원하셨다. 그 뜻에 따라 긴급 지원 사업과 연결해 장애인과 노인분들 의료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리는 이 기부자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기부를 함으로써 많은 분이 기부를 위한 연락을 주고 있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 기부심리가 위축됐는데, 나눔 문화를 알리고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최희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