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까지 갔는데… 비건 빈손 귀국길, 한반도 정세 안갯속으로

입력 2019-12-20 15:14 수정 2019-12-20 18:11

한국과 일본에 이어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끝내 북한과 접촉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베이징에서 북미 간 접촉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만나자는 그의 제안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비건 대표는 19일 중국에 도착해 뤄자오후이(羅照輝) 외교부 부부장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 대오에서 이탈하지 말 것과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뤄 부부장은 대북제재 완화 등 유화적 조치로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치적 해결에 나서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는 비건 대표가 중국 방문을 통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접점을 모색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도 “양측이 대화와 긴장 완화 추세를 유지해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관련국의 공통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발표해 미중 양국이 북한의 도발 자제 및 협상기조 유지에 공감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다만 비건 대표의 베이징 방문이 북미 간 접촉이나 그의 평양 방문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북한은 이날 오후까지 별도 메시지를 내지 않아 비건 대표는 귀국행 비행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일말의 기대를 하게 했던 북미 사이 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북한이 제시한 ‘연말시한’이 다가오면서 한반도 정세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달 말로 예고한 노동당 전원회의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등을 통해 미국과의 대결 구도를 명확하게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 서열 2위인 박정천 총참모장은 지난 14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두 번째로 ‘중대한 시험’을 했다며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ICBM용 엔진시험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에서 북미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지난해 4월 결정했던 ‘ICBM발사 및 핵실험 중단’ 방침을 거둬들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도 북한이 도발하면 2017년의 ‘화염과 분노’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태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내년 11월 대선을 의식해 대화의 창을 열어놓은 채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도발한다면 미 민주당 등의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강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찰스 브라운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교적 접근이 실패할 경우 2017년 북미 대치 상황에서 검토했던 것이 많아 금방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략폭격기 전개 가능성도 열어뒀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어서 반전이 가능하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비건 대표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미국이)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가 한국과 중국에 머무는 동안 북측과의 접촉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정부도 북미 간 대화 노력을 뒷받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