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19일 세종시 총리 공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저에게 한 번도 빼지 않고 ‘님’자를 붙여줬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은 그 연세의 한국 남자로서는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진중하고 배려심이 많다”면서 “저를 많이 신뢰해주셨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역량 때문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배려였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 앞에서도 스스로를 ‘저는’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어떤 점이 어려웠느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은 유머가 적으시고 진지하다. 어려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함이 아랫사람에게는 좀 더 어려울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저는 웃기기만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2년 7개월간 재임으로 ‘최장수 총리’ 기록을 남기고 직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그는 자신의 거취에 관해 문 대통령과 지난 8월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그 무렵 문 대통령이 총리 생각은 어떠신가 취지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 ‘문재인정부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 총선이고 정부와 여당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 중요한 일에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번 후임 총리 발표를 앞두고는 문 대통령이 하루 전 ‘내일 오후 직접 발표하겠다. 이 총리님도 자신의 정치를 할 때가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이 발표문에 그대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기자를 21년 하고 4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문제의식은 왕성했지만 정책이 현장에서 시행되는 과정까지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면서 “전남지사로 3년과 총리로 2년7개월간 일을 하면서 기자와 의원으로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게 소득”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로 되돌아간다면 그걸 알게 된 사람으로서 진중하고 무겁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의원 시절에도 거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국민이 갈증을 느끼는 건 정치의 품격이나 신뢰감”이라면서 “다시 돌아갈 그곳이 정글 같은 곳이지만 모처럼 국민이 신망을 보내준 그러한 정치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세종시에서 출마할 뜻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세종시는 상징성이 매우 큰 도시고 일하는 보람도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며 “훌륭한 분이 많이 도전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주지 문제에는 “오해를 살 수 있기에 당분간 이사는 보류하려고 한다”며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서울 잠원동의 집으로 일단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민주당 내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정치인에게는 조직 내 기반도 필요하지만 국민에 대한 호소력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그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라면서 “작은 조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정치의 임무에 부합할지 의문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책임총리라고 하면 대통령과 각을 잘 세우는 걸 책임총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헌법과 법률이 총리에게 지워준 일을 책임있게 하는 걸 책임총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관점에서 완전히 만족한다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책임총리로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그동안 청와대와 총리실이 서로 불편했거나 얼굴을 붉혔던 일은 제 기억에 한번도 없었다”면서 “모든 일에 의견이 일치했던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 의견 불일치도 원만하게 조정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앞으로의 시대 정신에 관한 질문에는 “성장과 포용이 동시에 중요하다. 그런 문제들을 실용적 진보주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는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고 ‘실용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추구하는 가치가 중요한 만큼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실용을 포기하면 안 된다. 해법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정부를 떠나야 하는 때가 되니 그동안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의 무거움이 저를 짓누른다”며 “그래도 경륜과 역량과 덕망을 모두 갖춘 정세균 의원이 다음 총리로 지명돼서 정부를 떠나는 제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밝혔다.
손재호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