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쿠르드 몰아낸 시리아 북부에 난민 정착촌 추진

입력 2019-12-19 17:15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P뉴시스

터키가 쿠르드 세력을 몰아내고 점령한 시리아 북부에 난민 100만명을 정착시키는 계획을 세워 추진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터키가 지난달 유엔에 제출한 시리아 북부 난민 정착촌 프로젝트를 입수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터키는 지난 10월 시리아 북부에서 군사작전을 벌인 결과 국경선을 따라 총연장 약 500㎞, 시리아 내부로 32㎞까지 들어가는 지역을 사실상 점령했다. 터키의 난민 정착촌 프로젝트는 이곳에 140개 마을을 세워 아랍계 난민 100만명일 이주시킨다는 구상이다. 점령 지역에는 6층짜리 건물이 100동 넘게 신축되고 주택 총 14만호가 들어서게 된다. 터키는 총 260억달러(약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유엔과 유럽 각국의 지원을 촉구할 계획이다.

안토니오 구테레쉬 사무총장이 유엔난민기구(UNHCR)에 터키의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한 가운데 이미 소규모 난민 이주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군이 지난달 말 주민 수백명을 시리아 북부 국경 지역으로 실어날랐고, 이들은 대부분 반군 측 가족이라고 FP는 보도했다.

터키의 난민 정착촌 프로젝트에 대해 쿠르드 세력은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를 몰아내는 계획이라고 반발했다. 쿠르드 민병대를 주축으로 구성된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압디 사령관은 FP와 인터뷰에서 “터키는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에서 했던 대로 이 지역에서 인종청소를 하고 있다”며 “미국은 21세기에 무력에 의한 인구구성 변화와 인종청소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지난해 터키군의 점령에 따라 역사적으로 쿠르드 거주지였던 아프린에 반군 측 아랍계가 대거 유입됐다. 난민 구호 전문가들도 터키의 난민 정착촌 계획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미국은 난민이나 피란민 강제 재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고 FP는 전했다.

현재 유엔에서 논의 중인 터키·시리아 ‘인도주의 국경 검문소’가 승인되면, 터키의 난민 정착촌 프로젝트는 더욱 힘을 받게 된다. 유엔 인도주의 국경 검문소는 국제사회가 시리아 난민 구호활동을 위해 설치하는 국경 통로를 뜻한다. 시리아 정부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유엔의 권위로 국경 진입 통로를 여는 것이다. 현재 터키에 2곳, 이라크와 요르단에 각각 1곳이 운영 중이다.

터키는 시리아 북부 탈아브야드로 진입하는 새로운 인도주의 국경 통로를 열어달라고 유엔에 요청했다. 탈아브야드는 터키가 올해 10월 군사작전으로 통제권을 갖게 된 국경 도시다. FP는 “탈아브야드에 유엔의 인도주의 구호 통로가 설치되면 터키군의 시리아 점령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터키의 난민 정착촌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