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의 상당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1가구 1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구주가 대부분 남성인 관계로, 여성들의 의견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주민들이 직접 성평등 마을규약 만들기에 나섰다.
19일 제주 여성계에 따르면 제주시 한림읍 한림3리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3리,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가 남성 위주의 마을규약을 성평등한 내용으로 개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올 한해 여러 차례 논의와 수정을 거쳐 완성한 최종안을 마을회에 제출, 내달 총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국 최초의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의 핵심은 가구당 1표로 돼 있는 의결권을 1인 1표로 바꿔 마을 문제에 여성의 평등한 참여를 명문화하는 데 있다. 상시 의사결정기구인 개발위원회(임원조직)에 일정 여성 참여 비율을 보장하고, 규약의 운영 목적에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마을 운영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이번 작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오래전부터 관습처럼 굳어져 온 마을 규약에 대해 주민들이 스스로 불평등 요소를 깨닫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 있다.
마을규약은 일종의 ‘마을 헌법’이다. 마을 발전의 목표와 방향뿐 아니라, 총회와 임원 조직의 구성과 운영, 이장 선출 등의 실질적인 절차가 들어있어 공동체 운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주의 경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일상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낮은 점수에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 여성의 삶에서 가장 가깝게 접속되는 공적 공간인 ‘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규약 개정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제주 전체로도 의미 있는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3개 마을의 규약 개정 과정에는 제주여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이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 힘을 보탰다.
규약 개정을 추진 중인 제주시 한림읍 한림3리 배주연 부녀회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십명만이 결정하던 마을의 일을 성인 주민 모두가 함께 결정하게 된다”면서 “내달 총회에서 이미 90% 이상 찬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현숙 제주도 성평등정책관은 “‘여다의 섬’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일상에서 제주 여성의 대표성은 낮은 점수에 머물고 있다”며 “내년에는 성평등마을규약이 더 많은 곳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