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 “난 특혜 신인, 정체성 혼란에도 트로트 홍보 됐으면”[종합]

입력 2019-12-19 15:50 수정 2019-12-19 18:39
MBC 제공


“신인치고 정말 많은 특혜를 받았죠. 죄송스러워요. 다만 유산슬로 트로트가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서, 정말 흥 넘치는 음악이라는 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실력 있는 신인도 더 주목받아야죠.”

신인이지만 당당하고, 겸손했다. 이런 소신을 전한 이는 바로 트로트 가수 유산슬(본명 유재석·47). 최근 더블 타이틀 곡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을 발표하며 문화계 트로트 부흥기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핫’스타다. 오는 22일 ‘1집 굿바이 콘서트’를 여는 유산슬은 19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꿈도 못 꿨던 단독콘서트이면서, 꿈을 꾸지 않았던 단독콘서트이기도 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행사는 유산슬이란 불세출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예능 ‘놀면 뭐하니’(MBC) 음악 프로젝트 ‘뽕포유’ 녹화의 일환이기도 했다. 중식당에 금장 용 무늬가 등에 새겨진 빨간 정장과 중절모를 차려입고 등장한 유산슬은 미리 앉아 있던 취재진 50여명과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 형식의 간담회였던 셈인데, 향후 ‘놀면 뭐하니’ 방송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재석과 김태호 PD의 합작인 유산슬의 흥행에 대해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유재석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MBC에서 유력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는가 하면 ‘아침마당’(KBS1) 등에 출연하며 방송사 간 높은 벽을 허무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런 인기에 EBS의 캐릭터이자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펭수와 라이벌 구도로 거론되기도 한다. 유산슬은 이에 대해 “저는 신인상을 타본 적이 없다. 자격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시상식 당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펭수 인기엔 못 미친다. 저도 펭수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겸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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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김 PD의 당황스러움을 자아내는 ‘무한도전’식 연출에도 금세 적응한 유산슬은 “너무 놀라는 일이 많아 당황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능수능란하게 행사를 이어나갔다. 간담회 중간과 말미에는 본인의 출세작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을 열창하기도 했다. 유산슬은 “프로그램 콘셉트 자체가 내가 모르는 상황에 대처해나가는 재미 포인트가 있다”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트로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말했다.

유산슬의 공으로는 트로트의 매력을 널리 알렸다는 게 첫손에 꼽히겠다. 나아가 유산슬은 서민 경제에까지 일조하고 있다. 유산슬이란 캐릭터가 흥행하면서 덩달아 중식당의 유산슬 매출도 늘고 있다고 한다. 유산슬은 “유산슬은 짜장면과 짬뽕에 밀려 잊힌 메뉴였는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가수 유희열씨가 유린기로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유린기(유희열)와 콜래보레이션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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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건 방송인 유재석과 가수 유산슬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오묘한 리듬감과 재미다. 유재석은 이 2개의 자아를 오가는 게 어려울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유산슬은 “지금 이 간담회도 유산슬로 하는 건지 유재석으로 하는 건지 혼란이 온다”며 “한번은 팬분께 사인해드리는데, 유재석으로 해드렸더니 유산슬로 해달라고 하시더라. 이젠 유산슬 사인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유재석에게 유산슬은 “평생 기억에 남을 캐릭터”였다. 그는 “캐릭터는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며 “시청자가 공감해줘야 한다. 유재석으로선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작진의 도움으로 정말 감사한 캐릭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가수로 활동한 지 100일을 맞은 것에 대해서는 “유산슬은 가수라기보단 프로그램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를 돌아봤을 때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만족하기는 힘들다”며 완벽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50살을 앞둔 유재석은 최근 가족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많이 느껴진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 만큼이나 가족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유재석은 “아침에 나경은씨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른 시일 내에 꼭 휴가를 가자’고 얘기했다”며 “일도 정말 즐겁고 좋지만, 가족들을 생각할 때면 빠르게 달리기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1991년에 데뷔한 유재석에게 2020년은 햇수로 데뷔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무명이었던 9년의 세월을 제외하더라도 20여년을 예능계에 깊이 뿌리 내린 채 시청자들과 동고동락해온 셈이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무한도전’ 종영 이후 방송가에선 한때 ‘유재석 위기설’이 돌기도 했다. 올해는 유재석의 부활을 알리는 시기였다.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이 그를 일으켜 세워줬다면, ‘놀면 뭐하니’는 그의 등에 다시금 날개를 달아줬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할 유산슬 아니, 국민MC 유재석이 가진 예능관은 무엇일까. 그는 “트렌드를 만들 능력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따라갈 생각은 더욱더 없다”고 강조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시청자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원하지만 그런 기획안이 방송사에서 받아들여지는 비율은 현저히 낮은 것 같아요. 시청률 같은 현실적 부분들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많은 고민을 해주고 프로젝트를 함께 해온 제작진에 고맙다는 얘기를 건네고 싶어요. 과분한 응원을 주신 시청자께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리고요. 2020년도 역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