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은 검사, 트럼프 진영은 변호사, 상원은 배심원 역할 분담
트럼프, 권력남용·의회방해 혐의 중 하나만 통과돼도 쫓겨나
트럼프, 탄핵되면 대통령 포함 앞으로 모든 공직 출마 길 막힐 수도
트럼프, 공화당 장악해 현재로선 상원에서 탄핵 가능성 낮아
미국 하원이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키면서 이제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상원의 본격적인 탄핵 심리가 내년 1월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상원의 탄핵 심리 앞에는 여러 지뢰들이 깔려 있다. 우선 미국 헌법은 상원의 탄핵 심리 절차에 대해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법률적 허점이 많다는 얘기다.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증인 선정 등을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 심리에 대해 발목을 잡거나 광기서린 공격을 쏟아 부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지 않는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상원의 탄핵 심리에서 하원은 검사 역할을 맡고, 상원은 배심원 역할을 각각 맡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꾸린 법률팀은 변호사 역할을 한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재판장 역할을 하며 탄핵 심리를 이끈다. 탄핵 심리가 끝나면 상원의원들은 공개 투표 형태로 표를 던진다.
미국 헌법은 상원 재적의원 100명 중 3분의 2인 67명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원 탄핵 심리에서 증인을 어떻게 부를지, 어떤 증거를 채택할지, 심리 기간은 얼마로 할지에 대한 규정은 헌법에 없다. 여야가 상원 탄핵 심리를 놓고 충돌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번 탄핵 심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첫 대결은 증인 선정을 놓고 벌어질 전망이다. 공격 진영인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트윗 경질’을 당해 폭탄 발언 가능성이 있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등을 새로운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기세다. 하지만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새로운 증인은 필요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률적 허점이 많은 상황에서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상원 탄핵 심리는 좋은 본보기다. 당시 여야는 상원 심리에서는 새로운 증거를 채택하지 않고, 하원 탄핵 심판에서 등장했던 핵심 증인의 증언은 녹음된 형태로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권력 남용 혐의와 의회 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두 가지 혐의 중 하나에 대해서만 상원의원들이 탄핵을 가결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쫓겨난다. 이에 더해 상원의원들은 탄핵 통과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어떤 공직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표결을 진행할 수 있다.
상원 탄핵 심리가 1월 초에 시작돼 1월 말에 끝나는 속도전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화당은 탄핵 심리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데다 민주당도 내년 2월 초부터 시작된 대선 후보 경선 전에 탄핵 심리를 끝맺기를 희망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될 경우 트럼프 진영이 ‘시간끌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WP는 “현재 상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53석으로 다수당이며 민주당 45석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 2명을 합쳐봐야 47명에 불과하다. 탄핵에 필요한 67명을 채우려면 공화당에서 20명 이상의 반란표가 나와야 하는데, 이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특히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기 없는 대통령이지만 공화당 지지집단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노리는 공화당 상원의원들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등을 지고 탄핵 찬성표를 던지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미트 롬니를 포함해 단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만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도 성향의 상원의원들이 공정한 탄핵 심리를 요구하는 것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메가톤급 비리 혐의가 발견되고, 여론이 탄핵으로 급격히 돌 경우 탄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서 상원에서 탄핵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는 아직 한 번도 없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