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해 일본 ‘미투(Me Too)’의 상징이 된 프리랜스 기자 이토 시오리(伊藤詩織·30)가 18일 성폭행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NHK에 따르면 도쿄지방법원은 이날 이토 기자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전직 TBS 방송기자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에게 330만엔(약 35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토는 지난 2015년 취업 상담을 위해 야마구치씨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호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1100만엔의 배상을 요구했다. 이토는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저서를 내면서 피해를 호소했지만 야마구치는 성행위는 합의로 이뤄졌으며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오히려 이토 씨에게 1억3000만엔의 배상을 요구했다.
도쿄지방법원은 이날 “이토가 친구와 경찰에 피해 상담을 해온 것이 성행위가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을 입증한다”면서 “반면 야마구치의 진술은 당시 보낸 메일과 내용이 모순되며, 핵심 부분이 불합리하게 변해 신뢰성이 중대하게 의심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은 야먀구치가 제기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이토가 성범죄 피해자를 둘러싼 상황을 개선하려고 피해를 공표한 행위는 공익성과 공익목적이 있고, 내용도 진실이라고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앞서 이토는 성폭행 피해에 대해 고소했지만 도쿄지검은 2016년 7월 준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야마구치에 대해 혐의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했다. 이토는 이에 불복했지만 검찰심사회 역시 “판결을 뒤집을 사유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은 타당하다고 결정했었다.
당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검찰이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토는 야마구치가 아베 신조 총리의 개인 연락처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저널리스트 중 하나였다며 이런 관계가 불기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해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토는 승소 판결 직후 “이번 판결로 하나의 단락을 찍었다고 생각한다”며 “형사사건은 불기소로 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게 됐지만, 민사소송을 제기해 공적인 법정에서 증거를 내놓아 조금이라도 (사실이) 공개됐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지금도 혼자서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 성폭력 피해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피해자의) 부담이 없어지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