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도망갔던 것…자수하려 했다” 정한근의 눈물

입력 2019-12-18 17:04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지난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해외도피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 씨는 18일 서울중앙지법 408호 법정에서 열린 심문기일에서 자신의 도피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이날 정씨가 1998년 7월 중국을 시작으로 홍콩 미국 에콰도르를 거쳐 지난 6월 체포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정씨에게 물었다.

재판부 등에 따르면 정씨는 1998년 7월 9일 재판을 앞두고 중국으로 도주한 후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정씨는 친구 유모씨의 여권을 이용해 미국에서 시민권 신분으로 거주했다고 한다. 그가 에콰도르로 넘어간 건 2017년쯤이다. 정씨는 지난 6월 18일 파마나를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다 파나마 이민청에 체포됐고, 브라질 두바이 등을 거쳐 한국으로 송환됐다.

정씨는 “결과적으로 범죄가 돼버렸지만 당시에는 상황 자체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며 “구체적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한국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재판을 받고 언젠가 나오면 제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이렇게까지 길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자수할 생각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최종적으로 거취를 정하려던 차에 잡혔다”며 “파나마에서 그런 식으로 잡혀서 들어오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고향에 가고 싶어서 나를 데려가는구나’ 생각해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연내 정씨를 추가 기소하겠다고 밝혔다(국민일보 12월 17일자 17면 보도). 정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자 자회사 동아시아가스주식회사(EAGC) 자금을 스위스에 있는 타인 명의 계좌에 예치해 횡령하고 재산을 국외로 빼돌린 혐의(횡령, 재산국외도피, 외국환거래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최근 정씨로부터 동아시아가스에서 66여억 원을 횡령했다는 자백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