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직원 A씨는 최근 부서 송년회 자리에 참석했다가 원하지 않는 3차까지 끌려갔다. A씨는 “부서 단합을 위해 1차 회식에 참여하는 것까진 좋았다”며 “그런데 늦은 밤 부서장이 직원 소수에게 2차를 가자고 강요했다. 이후 겨우 자리에서 빠져나왔지만 부서장이 직원을 시켜 ‘빨리 돌아오라’고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B씨는 최근 ‘송년모임 불참시 재계약은 없다’는 상사의 협박 때문에 괴롭다. B씨는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술값까지 강요한다”며 “‘최저임금이 올라 월급이 오르지 않았냐’고 하는데 직원 모두 재계약이나 회사생활이 힘들어질까봐 회식비를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말 송년회, 회식 자리에서 갑질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조금이나마 개선됐던 술자리 강요 문화가 연말을 맞아 부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1일~지난 15일까지 접수받은 ‘회식 갑질’ 제보 23건을 보면, 한 회사는 5개월 전 폐지했던 사내 회식과 야유회를 최근 부활시켰다. 이 회사에서 근무 중인 C씨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원 누군가가 야유회·회식 강요를 신고하자 회사 측에서 ‘앞으로 이런 자리를 일절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C씨는 상사에게 ‘몸이 아파 야유회 참석이 어렵다’고 했지만 안 된다는 답을 듣고 억지로 참석해야 했다.
회식 강요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해당 자리에서 각종 언어적·신체적 갑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회식 자리에서 부서별 장기자랑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직장인 D씨는 “회식 날 상사가 ‘왜 고기를 안 굽냐’ ‘왜 맛없는 표정으로 먹고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 자리에서 다른 선배들이 ‘요즘 애들은 다 그렇다’며 한마디씩 했다”고 말했다.
회식 불참시엔 각종 불이익이 잇따랐다. 중소기업 직원 E씨는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다음 날 업무 지적을 심하게 하거나 ‘신뢰 관계가 깨졌다’며 괴롭힌다”며 “회식 참여 여부에 따라 대우가 달라져 다들 눈치껏 참석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회식 중 많이 취해서 먼저 자리를 뜬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팀장과 팀원이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자문 변호사는 “회식 강요는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매뉴얼에서 ‘음주·흡연을 강요하는 행위’로 명시돼 있는 명백한 괴롭힘”이라고 강조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