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사건’에 맞부딪치는 검·경…국과수 감정 “조작”vs“오류”

입력 2019-12-18 10:51 수정 2019-12-18 11:09

이춘재의 자백으로 진범 논란이 불거진 ‘이춘재 연쇄살인 8차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사건 당시 윤모(52)씨가 범인으로 검거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체모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검찰과 ‘중대한 오류’였다는 경찰의 입장이 강하게 부딪혔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7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8차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한 1~5차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체모 등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하는 기법) 결과와 국과수 감정 내용 등을 발표했다. 경찰 수사본부는 당시 ‘모발에 의한 개인식별’ 관련 연구를 진행한 국과수 감정인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법과학 분야에 도입하면서 원자력연구원의 시료 분석 결괏값을 인위적으로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원지방검찰청은 같은 날 국과수 감정서에 ‘오류’가 있었다는 경찰의 발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검찰은 입장문에서 “‘국과수 직원이 감정 과정에서 시료 분석 결괏값을 인위적으로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 중요한 오류를 범했으나 당시 감정에 사용된 체모가 바꿔치기 되는 등 조작한 것은 아니다’라는 경찰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간 입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정자료, 국과수 감정서 등 제반 자료, 관련자 및 전문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종합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춘재 8차 사건'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검사(왼쪽)와 사건 관련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반기수 이춘재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는 “8차 사건 국과수 감정서는 일반인 체모를 감정한 결과를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에 대한 감정 결과인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고, 나아가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찰 브리핑에서의 설명과 달리 “원자력연구원의 1차 분석을 제외한 2~5차 분석에 쓰인 체모는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전 장비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스탠다드(Standard·표준) 시료일 뿐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검찰에 출석한 감정 전문가들이 “윤씨를 제외한 다른 모든 용의자에 대한 국과수 감정서에는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감정 결과를 기재했으나 유독 윤씨의 체모에 대한 감정서에만 엉뚱한 시료(스탠다드 시료)를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인 것처럼 감정서를 허위 작성해 조작했다”는 견해를 밝혔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경찰은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며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당시 원자력연구원에서 분석을 담당한 박사를 수차례 면담하고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해봤을 때 원자력연구원이 분석한 대조 시료(현장 음모)는 ‘스탠다드’로, 용의자들의 시료는 ‘샘플’로 표기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며 “여러 진술과 수치 등을 고려하면 현장 음모가 분석된 게 맞다”고 말했다. 조작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용의자 10명과 달리 윤씨만 스탠다드 시료로 분석하는 등 국과수 감정은 조작한 것’이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 수사본부가 확인한 결과 원자력연구원의 동일한 분석 결괏값으로 모두 대조·감정한 게 맞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과 경찰이 갈등을 직접 노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측의 갈등 구도는 검찰이 지난 11일 이춘재 8차 사건에 대한 직접 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더욱 강해졌다. 검찰은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수원구치소로 이감하면서도 경찰에 일절 알리지 않아 검찰 발표 첫날부터 두 기관 사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이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