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특히 심한 이탈리라 프로축구 세리에A가 반(反)인종차별 캠페인 포스터에 ‘원숭이’ 이미지를 사용해 비판이 쏟아진다. 원숭이는 서구사회에서 유색인종을 조롱할 때 사용되는 동물이다. 포스터 창작자는 ‘모든 인간은 유인원’이라는 취지에서 흑인선수를 원숭이로 일컫는 것이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방송 등은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가 각 구단들이 이탈리아 축구의 ‘심각한 문제’(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한 지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반인종차별 캠페인에 원숭이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세리에A 사무국은 밀라노 본부 건물에 마련된 공간에 원숭이 그림이 담긴 포스터 3점을 걸었다. 각 원숭이는 눈과 피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세리아A는 통합, 다문화주의, 형제애를 확산하고자 원숭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각종 인종차별 반대 시민단체, 축구선수들은 경악했다. 차별반대 시민단체 파어(Fare)는 “이탈리아 축구는 또 다시 세계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며 “세리에A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와 상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국이 매주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나라에서 세리에A는 역겨운 농담 같은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킥 잇 아웃’(Kick It Out)은 “세리에A가 반인종차별 캠페인에 원숭이를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어떤 긍정적인 의도를 훼손하며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 여자 프로축구클럽 첼시의 수비수 아니타 아산테는 “세리에A, 당신들은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한다”라며 “무슨 문제가 있나? 의뢰한 작품을 보고 결재를 한 사람이 몇 명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유럽 프로축구리그에서 인종차별은 고질적인 문제다. 관중들은 흑인 선수나 동양인 선수를 원숭이에 빗대며 바나나를 던지거나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 꾸준히 논란이 있어왔다. 이는 스타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세리에A는 인종차별로 유명하다. ‘악동’으로 유명한 브레시아 칼초 소속 흑인선수 발로텔리는 지난달 엘라스 베로나와의 세리에A 경기에서 인종차별 구호의 표적이 됐다. 세리에A 인터밀란 소속이자 벨기에 국가대표 로멜루 루카쿠는 지난 9월 상대팀 관중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해 불만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소속팀 서포터즈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했다.
포스터를 제작한 이탈리아 예술가 시모네 푸가초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원숭이는 인간의 은유이므로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BBC는 푸가초토가 항상 작품에 원숭이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푸가초토는 “작년에 나는 인터밀란과 나폴리의 경기를 보면서 수치심을 느꼈다”며 “모든 사람들이 내가 존경하는 선수인 쿨리발리에서 ‘원숭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원숭이를 5~6년간 그려왔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유인원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려고 생각했다”며 “파랗고 하얀 눈을 가진 서쪽 원숭이, 아몬드 모양의 눈을 가진 아시아 원숭이, 모든 것이 유래된 중앙에 위치한 검은 원숭이를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NYT는 푸가초토의 해명이 진실이라고 해도 ‘경악할 만한 판단 착오’라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