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함께 벌어진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경찰 관계자들이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정식 입건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7일 브리핑을 통해 8차 사건을 담당한 형사 7명과 검사 1명을 직권남용 및 가혹 행위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중 실종 사건을 맡았던 형사계장 A씨과 형사 B씨는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혐의가 추가됐다.
이미 언론에는 거짓 자백 유도나 가혹 행위로 인한 사망 등 1980년대 당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과오들이 몇 차례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시신을 숨기고 실종자의 유류품을 없앤 정황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성 태안읍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30분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모(8)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일이다.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일 입었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이 인근에서 발견됐으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1년이 지나서였다. 김양의 물건이 발견된 태안읍 병정5리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한 여중생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9차 사건’이 발생하자 덩달아 화제가 된 것이다.
김양의 아버지는 딸이 사라진 뒤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리지 않았다. 끝내 김양 가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건을 ‘단순 실종’으로 종결했었다.
김양의 유류품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온 건 1989년 12월 21일이었다. 김양의 아버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날은 같은 달 25일이다. A씨와 B씨는 21일과 25일 사이 김양의 시신을 발견했고 은닉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남부청수사본부가 이같은 판단을 한 데에는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살던 주민의 진술이 큰 역할을 했다. 주민은 “1989년 초겨울 형사계장 A씨와 야산 수색 중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이 진술은 앞서 확보한 이춘재의 자백과도 일치한다. 이춘재는 “김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며 “범행 당시 양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고 주장했다. 수사본부는 당시 경찰이 김양의 아버지와 사촌 언니의 참고인 조사에서 줄넘기 관련 질문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같은 내용은 A씨 등이 사건을 단순히 안일하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숨기려 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수사본부는 지난달 1일부터 9일까지 이춘재가 자백한 김양 시신 유기 장소 인근을 수색했다. 그러나 김양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A씨 등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대적으로 진행됐던 수색 작업의 의미마저 잃게 된다. A씨 등이 김양의 시신을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사건 현장 인근이 토지 개발 등으로 깎여 나가는 등 크게 바뀌어 추가 유골 수색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수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