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개최한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연 규탄대회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당 지지자를 비롯한 ‘태극기 부대’의 격한 시위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황교안 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지도부가 적극 가담한 것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과거 민주노총의 국회 점령 당시 황 대표가 했던 발언이 재조명 되면서 ‘이율배반적’ ‘내로남불’ 등의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고위공직자수범죄수사처(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열었다. 20여개 보수성향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반대한민국세력축출 연대’ 소속 1000여명이 참석했고, 황 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일부 의원들도 자리했다. 시위대는 저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국회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본관으로 통하는 4개 문으로 난입하기 위해 방호 인력과 경찰을 거칠게 밀어내며 충돌했다. 또 ‘문희상을 쳐라’ ‘빨갱이’ ‘2대 악법 날치기 반대’ ‘독재 타도’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고 같은 구호를 외쳤다.
국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옥외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곳이다. 정치권이 관행적으로 규탄대회 또는 결의대회라는 이름으로 국회 안에서 집회·시위를 해오기는 했다. 다만 이날처럼 지지세력이 국회 본청 난입을 시도한 건 거의 드문 일이다. 앞서 한국당은 같은날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에게 그간 정치권이 해왔던 수준에서 평화적 규탄대회를 열겠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소동으로 국회 직원들조차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황 대표는 이날 시위대 무리에 서 이들을 격려했다. 그는 확성기를 튼 채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에 들어오실 때 자유롭게 오셨습니까. 막혔죠? 오래 고생하셨죠? 여러분 들어오신 것 이미 승리한 겁니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시위는 격렬해졌다. 한국당 지도부도 합심했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발언했고 정미경 최고위원과 성일종 의원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저격하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참가자들은 황 대표와 당 지도부가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해산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이 출동해 집회 중단과 해산을 촉구했으나 시위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참가자들의 폭력 사태도 발생했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당시 국회 본청 앞 ‘선거개혁 농성장’에 있던 정의당 당원 및 당직자들을 폭행했다. 강 대변인은 “당원들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장시간 퍼부었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며 “그 와중에 황 대표는 집회 대오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히 국회 본청으로 입장했다”고 했다.
이같은 피해사례 외에도 국회로 들어오던 여당 중진 의원들의 봉변 소식이 전해지자 정계에서는 제1야당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했다. 특히 문 국회의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폭력 사태까지 불거진 현장에 황 대표가 직접 나서 발언했다는 점도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황 대표는 이날 첨석자들을 향해 “고생했다” “승리했다”고 외쳤다. 불과 8개월 전 민주노총의 국회 시위를 비판하며 했던 말과는 180도 다르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 초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내 진입을 시도하며 담장을 무너뜨렸다. 검찰은 지난 3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바로 이 때의 일을 두고 황 대표는 “폭력 시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사람을 폭행하고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경찰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다”며 “엄정한 법 집행으로 더 이상의 불법 폭력 시위를 막아야 하며 이들 주장에 국회와 정부가 휘둘려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희경 당시 당대변인 역시 “참으로 가관이다. 대한민국 법치주의 담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거들었다.
민주노총을 향한 황 대표의 ‘저격’은 지난 8월에도 나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이 꼼짝 못하는 두 집단이 있다”며 “밖으로는 북한, 안으로는 민노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두 집단에게는 ‘만행 면허증’이라도 발급해준 것 같다”며 민주노총이 벌였던 시위를 재차 지적했다. “민노총의 불법과 만행이 도를 넘으면서 대한민국은 노조공화국이 되고 말았다”며 “대한민국 곳곳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말도 했다.
또 “경찰을 패고 국회 담장을 부수고 난입하고 법원 명령을 마음대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폭력 수준으로는 조폭 집단을 넘어섰고 권력은 대통령보다 더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질타하기도 했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