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2일 독일 레버쿠젠 바이 아레나. 2016-2017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8라운드가 열린 이곳에서 홈팀 레버쿠젠을 지휘하던 로저 슈미트(52·현 베이징 궈안) 당시 감독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득점 없이 두 번째 실점을 허용한 후반 4분쯤, 급기야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건 득점이 아냐. 이 미치광이야. 입을 다물어!”
상대팀 감독의 면전에 대고 한 말이었다. 슈미트 감독은 퇴장을 당했고, 레버쿠젠은 0대 3으로 졌다. 극단적으로 행동할 만큼 자존심이 상했을까. 하나는 확실했다. 상대팀 사령탑은 슈미트 감독보다 스무 살 어렸고, 막 프로 1군 팀을 지휘하기 시작한 풋내기였다. 그해 ‘호펜하임 돌풍’을 일으켰던 율리안 나겔스만(32·현 라이프치히) 감독 얘기다.
전임자의 건강 악화로 호펜하임 사령탑을 물려받아 생애 처음으로 1군 팀 지휘권을 잡은 2016년 2월, 나겔스만 감독의 나이는 만 28세였다. 이보다 8년 앞선 어린 나이에 무릎 부상으로 선수 경력이 중단돼 국가대표는커녕 프로 경력도 일천했다. 지도자 경험의 대부분을 유·청소년 팀에서 쌓은 그가 1군 사령탑으로 부임하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홍보를 노린 곡예’ ‘괴짜의 사고’라는 비난이 호펜하임으로 빗발쳤다.
나겔스만 감독은 의식하지 않았다. 정장보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훈련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드론을 날려 선수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스쿠터를 타고 선수를 쫓아다니는 그의 젊은 리더십은 호펜하임 선수단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호펜하임은 2016-2017 분데스리가를 완주했을 때 이전 시즌보다 순위를 11계단이나 끌어올린 4위에 있었다.
1987년 7월생인 나겔스만 감독의 나이는 이제 만 32세다. 리오넬 메시와 루이스 수아레스(이상 바르셀로나), 투수 류현진(LA 다저스), 남자프로테니스 랭킹 2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현역에서 전성기를 보내는 나이에 나겔스만 감독은 사이드라인 밖에서 지도자 인생 2막을 열었다. 지난 7월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라이프치히에서 또 한 번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라이프치히는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2강’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각각 3위와 5위로 밀어내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중간 전적 10승 3무 2패(승점 33)로 리그의 반환점을 1위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나겔스만 감독은 3백을 기반으로 한 3-4-3 포메이션을 선호하지만 젊은 감독답게 포메이션에 연연하지 않고 유연하게 전술을 운영한다. 선수 시절에 센터백이었던 그는 최후방의 정중앙에서 그라운드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도 가졌다. 그렇게 강자들을 물리쳤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2009년 창단 후 10년 만에 이뤄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이다. 나겔스만 감독은 이제 손흥민(27)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와 맞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첫 경기는 내년 2월 20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준우승 팀이고, 주제 무리뉴(57) 감독이 부임한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나겔스만 감독은 주눅이 들기는커녕 자신감을 분출하고 있다. 그는 17일(한국시간) 라이프치히 트위터를 통해 “토트넘은 신나는 상대다. 쉽지 않겠지만 기대하고 있다. 흥분된다.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