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제자, 잃을 뻔한 군 장병 한쪽 팔 살려냈다

입력 2019-12-17 07:48
차량 끼임 사고를 당해 절단 위기에 놓인 장병의 당시 팔 모습. 국군수도병원, 연합뉴스 제공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 의료진이 일선 군부대서 차량 끼임 사고를 당해 절단 위기에 처했던 장병의 한 쪽 팔을 살려냈다. 헬기를 통한 신속한 이송과 기발한 대처가 빛을 발했다.

12시간 넘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국내 외상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의 제자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17일 국군수도병원에 따르면 강원도 춘천의 모 항공부대에 복무하던 김모(21) 상병은 지난 6일 오후 4시 30분쯤 후진하던 유조 차량이 후미 차량과 충돌하는 것을 왼팔로 막다가 팔 전체가 차량 사이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김 상병의 왼팔은 뼈, 근육, 혈관이 모두 끊어졌다.

사고는 곧바로 군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접수됐고 센터는 즉시 헬기를 이용해 경기도 성남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에 긴급 후송키로 결정했다. 김 상병이 헬기를 타고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사고 발생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5시 37분쯤이었다.

국군수도병원은 의료종합상황센터로부터 김 상병의 심각한 상태를 미리 전달받아 검사실과 수술실 준비를 모두 끝낸 상황. 긴급 수술을 위해 국군외상센터 외상진료팀장인 이호준(37) 소령이 대기 중이었다.

이 소령은 “차량 사이에 낀 왼팔 상완부(윗팔뼈)가 완전히 짓눌리면서 동맥 1개와 정맥 2개가 각각 10㎝가량 끊어져 있었고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구획 증후군’이 동반돼 맨 눈으로 손상 부위를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팔 내부의 뼈, 혈관은 모두 끊어지고 피부만 붙어 있었던 셈”이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소령은 그간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외상 환자를 치료해오다 지난 3월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을 이 교수와 함께 수술로 살려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응급 수술에는 이 팀장 외에도 동료 전문의 5명과 간호사 10여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환자를 접한 의료진의 고민은 컸다. 김 상병의 팔을 절단할지, 이어붙일지 판단이 쉽지 않았기 때문. 실제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이처럼 외상이 심한 환자의 팔을 이어붙인 사례가 없었다.

끊어진 혈관은 6시간 안에 이어붙여야 괴사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끊어진 끝을 찾기도 힘든 상황에서 혈관 3개를 모두 복구하려면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이런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이 소령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미군 의료진과 함께 했던 학회 때 배운 ‘수액 줄’을 떠올린 것. 수액 줄을 혈관에 넣어두면 혈관을 이어붙이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혈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의료진은 바로 손목 요골동맥(위팔 동맥에서 갈라져 팔 아래쪽 바깥쪽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절개한 틈으로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넣어 끊어진 혈관의 끝을 찾고, 그 사이를 수액 줄로 이어붙였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의료진은 김 상병의 오른쪽 허벅지에서 ‘대복재 정맥’(안쪽 발목에서 사타구니까지 이어지는 혈관)을 30㎝가량 떼어와 끊어진 혈관 3개를 차례로 연결했다. 총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은 이튿날 아침 7시 6분쯤이 되서야 끝났다.

치료를 주도한 이 소령은 “신속한 환자 이송과 여러 전문의들의 빠른 판단과 조치가 어우러져 김 상병의 왼팔을 이어붙일 수 있었다.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면서 배운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수술 10일이 지난 17일 현재 김 상병의 팔은 일부 감각이 돌아온 상태다. 다만, 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신경회복 여부는 최장 1년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게 의료진의 판단이다.

국군수도병원이 치료에 촌각을 다투는 외상 장병에 대한 치료 성과를 거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도 외상팀은 비슷한 치료 방식으로 손목 절단 장병을 치료했는데, 이 장병은 현재 절단됐던 손목으로 글씨까지 쓸 정도로 상태가 회복됐다. 11월에는 폭발사고로 실려 온 군 장병들이 외상팀의 손을 거쳐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국군수도병원은 2020년 3월 국군외상센터가 정식 개소하면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 환자까지 진료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국군수도병원 한호성(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병원장은 “국군을 우선 치료하기 위한 외상센터지만, 국가의 외상치료 자산으로써 공공 의료의 중심 역할을 하자는 뜻으로 민간인 진료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웅 국군의무사령관은 “장병이 어느 곳에서 다쳤어도 항상 헬기를 이용해 신속히 수송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