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봉쇄당했다…한국당 지지자들 난입에 대혼란

입력 2019-12-16 17:34 수정 2019-12-16 18:11
우리공화당 당원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태극기와 함께 공수처법, 선거법 반대 등이 적힌 손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협상과 타협의 묘가 실종된 국회가 ‘거리 정치’에 포위당했다. 자유한국당이 16일 국회에서 주최한 ‘고위공직자수범죄수사처(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참석한 보수 단체 회원들이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하면서 난장(亂場)이 벌어졌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 국회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고, 국회 앞 대로도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대화보다 장외 여론전에 몰두한 정치권이 자신들이 부추긴 거리의 분노를 결국 국회 안으로까지 끌고 온 셈이 됐다.

20여개 보수성향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반대한민국세력축출 연대’ 소속 1000여명은 이날 한국당이 여는 규탄대회 참석을 위해 국회로 집결했다. 500여명으로 예상됐던 참석인원의 두배에 달하는 인원이 국회 본관 앞 계단을 가득 메우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황교안 대표는 “여러분이 국회에 들어온 것 자체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래 국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옥외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장소다. 다만 정치권은 관행적으로 규탄대회 또는 결의대회란 이름 아래 국회 안에서 집회·시위를 해왔다. 한국당은 이날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에게 그간 정치권이 해왔던 수준에서 평화적으로 규탄대회를 열겠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본관 앞 문희상 국회의장 주차 표지석이 훼손돼 있는 모습. 김용현 기자

하지만 이날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가 불발될 경우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예고한 날이어서 집회 참석자들이 잔뜩 흥분된 상태였다. 결국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회 본관으로 통하는 4개의 문으로 난입을 시도했고 방호 인력과 경찰이 이를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출입구마다 ‘문희상을 쳐라’, ‘빨갱이는 물러가라’는 식의 원색적인 구호가 넘쳐났고, 일부는 경찰과 방호 인력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이들은 본관 앞에 위치한 국회의장 및 교섭단체 당대표·원내대표 주차 표지석도 훼손했다. 문 의장의 주차 표지석에는 ‘개xx’라며 욕설이 써졌다. 설상가상으로 국회 담장 밖에서도 시위 인원이 집결해 결국 국회로 진입하는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기도 했다. 국회 안팎으로 배치된 2000여명의 경찰 인력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뒤엉키면서 국회 직원들조차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차량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과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주행을 못하고 있다. 뉴시스

규탄대회 인근에서 선거제 개혁 농성을 진행 중이던 정의당 관계자들이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청년 당원들의 따귀를 때리거나 머리채를 붙잡았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전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수단체 회원들과의 물리적 충돌로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가기도 했다.

문 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특정세력 지지자들이 국회를 유린하다시피 했다”며 “한국 정치에 데모크라시는 온데간데없고,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만 난무하고 있다. 국민이 매일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것도 모자라, 부추기는 정치행태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막장 정치를 초래한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국회가 제역할을 못하다 보니 국민들이 너도나도 국회 안에 들어와서 농성을 하고 적의를 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우삼 신재희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