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코드, 한국에 더 심각한 부작용 일으킬 수 있다”

입력 2019-12-16 17:12 수정 2019-12-16 17:16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가 한국에 도입되면 다른 국가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형민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넥슨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9 게임문화 융합연구 심포지엄-컨버전스’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게임 질병코드 도입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HO는 게임이용장애를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의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위 장애’에 포함했다. ICD-11은 2022년부터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에 적용된다. 이를 한국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2025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에서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가 부여된다. 본격 시행은 2026년부터다.

게임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산업적, 문화적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게임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이끄는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지난 9월 ‘게임스파르타’ 출범식에서 “게임을 질병으로 몰고가는 것은 게임 규제의 끝판왕”이라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본질로서의 게임, 미래 사회를 이끌어가는 도구로써 게임, 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불리는 게임, 인간의 삶을 변화하는 게임 등의 가치를 앞세워 질병코드를 저지하겠다”고 했다. 지난 9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회장 한성숙)가 공개한 ‘게임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가 게임 방송 광고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게임 질병코드 국내 적용 시 3년간 1256억원의 방송 광고비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7월 민관협의체를 출범했지만 찬반 양측의 첨예한 의견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날 이 교수는 한국·미국·일본 3국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게임 질병코드가 인식의 측면에서 한국에 가장 민감한 결과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산업, 문화 등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 주장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이후 예상되는 편견 및 사회적 낙인에 대한 영향 연구’란 주제로 진행된 설문조사는 한국 505명, 미국 577명, 일본 50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에 따른 사회적 낙인에 가장 큰 우려를 드러냈다. 연구에서 쓰인 질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으로 인해 게임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게임 중독자, 정신병자 등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KCD-11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의 국내 도입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게임이용장애를 앓고 있다면 치료받은 질병 기록을 공개할 것이다” 등이다. 세 가지 항목에서 한국인들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교수는 “한국 국민은 게임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게임 중이용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하고, 한편으로 본인이 그렇게 평가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질병코드 도입 후 예상되는 사회적 부작용이 더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질병코드 도입으로 게임 이용자에 대한 편견이 커지면서 게임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공개했다. 게임 이용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인해 게임 광고, 게임 산업 인식, 게임 구매 의향, 게임 추천 의향 등이 부정적으로 돌아선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부정적 사회적 낙인이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게 관찰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면서 “낙인 이론에 근거해 제시했던 연구 가설이 대부분 연구를 통해 지지가 되었다. 게임이용장애 도입 후 편견이나 사회적 낙인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인이 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내재한 사회 갈등적 요소 또한 확인된다”면서 “게임 산업과 게임 문화의 존폐가 염려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부정적 분위기가 조성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