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최근 주미 중국 대사관 직원 2명을 비밀리에 추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대미 스파이 활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첨단기술 뿐아니라 안보기밀, 심지어 새로 개발한 씨앗까지 빼내 가는 등 무차별적인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주미 중국 대사관 직원 2명이 버지니아주 노퍽의 미군기지를 염탐하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추방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이 스파이 혐의로 중국 외교관을 추방한 것은 1987년 미 국가안보국(NSA)이 기밀서류를 빼돌리려 한 중국 외교관 2명을 추방한 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 대사관 직원들은 미군 기지 정문 검문소에서 보초가 유턴해서 나가라고 했으나 곧바로 직진해 무단으로 들어가다 트럭으로 도로를 막은 미군에 검거됐다. 이 기지는 특수작전부대가 주둔하는 곳이다.
이들은 미군 보초의 영어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둘러댔지만, 미 당국은 이들 중 최소 1명이 외교관 신분의 중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군기지의 보안 상태를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과 중국 측 모두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미 관리들은 최근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중국 대사관 직원들이 정부 및 연구시설에 예고 없이 나타나는 등 스파이 활동이 대범해졌다고 NYT에 전했다.
미 국무부는 ‘기지 침입’ 사건 후인 지난 10월 중국 외교관들이 미국 당국자들을 만나거나 교육·연구기관을 방문하기 전에 사전 통지를 하도록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10여 년 전부터 정교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보 요원들은 최근 세계 최대 비즈니즈 네트워크 사이트인 링크트인(Linked-In)을 이용해 전·현직 외국 정부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일자리나 프로젝트 등을 미끼로 링크트인을 통해 해외 전·현직 공직자와 전문가를 포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에는 CIA 요원 출신인 케빈 패트릭 맬러리가 중국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링크트인을 통해 중국 정보 요원에게 포섭됐다. 중국 요원은 2017년 2월 싱크탱크 직원으로 가장해 링크트인 메시지로 맬러리에게 처음 접근했다.
지난해 10월 미 법무부가 경제 스파이 혐의로 기소한 중국 정보요원도 링크트인을 통해 제너럴일렉트릭(GE) 항공 분야 엔지니어를 포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들어서는 중국인 유학생 자오첸리가 미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해군 항공기지에 있는 위성 안테나 등 정보시설을 촬영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시설은 방대한 지역을 대상으로 안보위협을 감시하는 시설로 허가 없이는 출입이 통제돼 있다. 자오는 체포되자 중국 대사관 직원들처럼 서투른 영어로 길을 잃었다고 변명했다.
중국 요원들은 정부 시설 뿐아니라 특수 재배한 씨앗을 훔치다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인 모하이룽은 2016년 미국 듀폰 파이어니어 등이 개발한 옥수수 씨를 훔쳐 중국으로 밀반출을 시도한 혐의로 지난해 6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미연방수사국(FBI)과 국립보건원은 미국의 생의학 연구 성과를 훔쳐 중국에 넘기려고 하는 미국내 과학자들을 적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FBI는 중국인 학생들과 학자들의 스파이 위험성을 연구기관들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홍콩 출신의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제리 춘싱 리에게 중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한 혐의로 징역 19년형이 선고됐다.
리는 CIA를 떠난 뒤 2010년부터 약 3년간 중국 정보요원들로부터 84만달러를 받고 CIA 재직시 알고 있던 인적 네트워크 명단과 정보 수집기법 등 기밀 정보를 넘긴 혐의다. 그가 중국에 정보를 넘긴 결과 CIA의 중국 첩보망이 와해했다고 미 당국은 보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