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장발장’ 父子 “시민이 준 20만원 돌려주려 뛰쳐나가”

입력 2019-12-16 15:59
이재익 인천 중부경찰서 경위. MBC뉴스 캡처

배가 고파 마트에서 우유와 사과 등을 훔치다 적발됐던 부자가 한 시민이 건넨 20만원의 봉투를 돌려주기 위해 뛰어나갔던 사연이 전해졌다. 사건 당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던 이재익 인천 중부경찰서 경위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들 부자의 뒷이야기를 밝혔다.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지난 10일 우유 2팩과 사과 6알, 음료수 등 1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치던 아버지 A씨(34)와 아들(12)은 현장에서 적발됐다. CCTV 바로 밑에서 가방에 식료품을 담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인 탓에 마트 직원이 바로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사연을 들은 이 경위를 비롯한 주변 시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온정을 베풀었다. 이 경위는 두 사람을 국밥집에 데려가 허기를 달래줬으며 마트 대표는 선처를 베풀었다. 한 시민은 국밥을 먹고 있던 부자에게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A씨와 그의 아들이 지난 10일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1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가방에 담고 있는 모습. MBC뉴스 캡처

A씨와 그의 아들이 지난 10일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1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가방에 담고 있는 모습. MBC뉴스 캡처

이 경위는 이 따뜻한 이야기의 자세한 후기를 전했다. 그는 출동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부자의 행색은 초라했다. 아버지는 지병이 있어 땀을 많이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왜 그랬냐 물으니) ‘배가 고파 훔쳤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두 아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던 A씨는 6개월 전 당뇨병과 갑상선증 때문에 하고 있던 택시기사 일을 그만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한다. 아내와는 이혼해 홀로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 같은 사연을 들은 이 경위는 두 사람을 훈방조치하기로 결정한 뒤 국밥집으로 데려가 밥을 샀다.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싶었다”며 “(부자는) 그냥 따라왔다. 제가 고기 많이 드시라는 말 정도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가 A씨와 그의 아들을 데리고 국밥집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MBC뉴스 캡처

이 경위는 한 시민이 국밥집에 들어와 부자에게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던 상황도 전했다. 그는 “저도 (그 시민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CCTV를 다시 확인해봤다. 마트에서부터 저희가 사건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 지켜봤더라”며 “(저희가) 국밥집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다 확인을 했다. 그리고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와서 20만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말없이 놓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의 아들은 그 봉투를 돌려주기 위해 곧바로 쫓아나갔다. 이 모습을 본 그는 “아들이 타고난 인성이 나쁘지 않구나, 좋은 애구나 (생각했다). 그 모습이 저한테는 많이 와닿았다”면서도 “(아들이 달려갔지만) 못 만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이 경위는 A씨와 함께 근처 주민센터로 이동해 A씨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경위는 “아버지한테 근로 의욕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굉장히 강력하게 의사를 피력했다”며 “그런 내용을 사회복지사에게 전달하고 현재 아버지의 건강 상태와 부합하는 일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상담을 하고 최대한 노력해보겠다는 확답을 듣고 왔다”고 밝혔다.

부자는 이 경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 경위는 A씨에게 “하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봉양하고 두 아들을 양육하는 데 꼭 보탬이 되는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했다”며 “이행이 되는지 제가 한 번 지켜볼 생각”이라고 흐뭇한 마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