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가 한 것으로 하자” 검찰 증거에 무너진 정한근

입력 2019-12-16 04:00 수정 2019-12-16 05:28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가 지난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해외 도피 21년 만에 송환돼 기소된 고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씨가 최근 “추가 횡령액이 있다”고 검찰에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의심한 대로 자신이 실소유주인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지분과 관련해 빼돌린 자금이 더 있으며, 이는 결국 본인의 결정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검찰은 정씨와 주변인들의 진술을 묶어 정씨의 횡령 혐의를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최근 정씨로부터 추가 횡령을 시인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검찰은 정씨가 보유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지분 가운데 포착하지 못한 횡령·은닉 부분이 더 있다고 보고 꾸준히 수사를 해왔다. 정씨는 처음에는 추가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이 증거를 제시하며 관련자 대질 조사를 이어가자 “내가 한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정씨가 추가 횡령으로 시인한 부분은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주식회사(EAGC)가 보유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지분 중 오리무중으로 남아있던 부분이었다. 정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자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한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20%에 해당하는 900만주를 5790만 달러에 매각하고도 2520만 달러에 판 것처럼 신고한 뒤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혐의(횡령, 재산국외도피, 외국환거래법 위반)로 기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검찰은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지분율이 27.5%였던 만큼 나머지 7.5%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가스에서 근무했던 전직 대표 A씨와 에콰도르에서 정씨의 유전사업을 도왔던 회계직원 B씨 등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혐의를 부인하는 정씨를 상대로 문제의 주식 지분 7.5%가 매각될 때 B씨에게 건넨 이메일을 제시했다. 검찰이 확보한 이메일 자료에는 주식 매각 방식과 과정, 이후 절차 등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정씨는 “내가 한 걸로 하자”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정씨와 함께 혐의를 부인하던 B씨도 이메일 증거 앞에 사실을 인정했다.

추가될 횡령액은 약 570만 달러(6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씨가 빼돌린 자금과 아프리카의 한 페이퍼컴퍼니와의 연관성을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주쯤 정씨를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수사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이나 기소시기를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이달 둘째 주 정도에 다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