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씨가 지난 13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 소속 강사였던 고인은 지난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출강을 할 수 없다는 학교 측의 통보를 받고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1998년 한예종 내 전통예술원이 설립된 뒤부터 줄곧 강사 신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그러다 지난 8월 대학 측이 ‘석사 이상 학위를 소지한 강사를 뽑겠다’는 입장을 전해와 강의를 그만두게 됐다. 한예종은 지난 학기까지는 학위가 없어도 예술활동 경력 등을 감안해 강사 자격을 부여했다. 한예종을 떠난 이후 김씨는 전공생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및 단체레슨도 할 수 없어 공연 수익 등에 의존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동해안별신굿 등 무속 분야의 권위자였던 고인이 강사법이 시행되면서 한예종 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알고 있다”면서 “퇴직 이후와 후학 양성 등을 준비하던 고인에게는 큰 타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등은 이날 오전 발인 등 주요 장례 절차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예술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은 강사법이 제정된 이후 학위는 없지만 전문성을 인정받았던 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술인은 “강사법이 좋은 취지에서 시행됐다지만, 학위를 취득하기도 어려운 전통예술 등 분야에는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예종 등 예술대학이 있는 대학에서는 고인과 비슷한 시기에 해고 통보를 받은 전통예술 종사자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고인의 실직과 강사법 시행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강사법에 따르면 강사의 경우 최종학력에 따라 일정 연구실적이나 교육연수를 수료하면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임용이 가능하다”면서 “관련 분야에 전문 경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학위가 없더라도 교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교육부는 “한예종의 경우에는 강사법 시행령에 따라 ‘각종학교’로 분류돼 학위가 없는 전문가도 필요성을 인정해 유연하게 교원임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예종 측은 이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82-1호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보유자 직전 단계에 있었던 고인은 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배웠다. 무속 등 전통예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예종과 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