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830g 미숙아’ 가을이가 만난 기적

입력 2019-12-15 10:25
830g. 아이는 1㎏도 안되는 무게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얼마 뒤에는 엄마마저 사라져 버렸지요. 남은 건 ‘가을이’라는 이름 뿐이었습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던 작고 연약한 아이. 하지만 830g 작은 생명은 살아났습니다.

국적도 없이 버려진 아이 가을이를 살린 지난 10개월의 기적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가을이의 사연은 조금씩 힘을 보태 기적을 만든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가을이의 출생 100일을 축하하는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지난 2월 말 30대 중국 여성이 경기도 안산시 소재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임신 25주 만에 미숙아를 출산했습니다. 가을이라고 불리는 이 미숙아는 무려 10여주나 일찍 세상에 나온 탓에 출생 당시 몸무게가 830g에 불과했습니다. 너무 일찍 태어나 가을이의 장기 일부는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수술이 급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을이 엄마는 얼마 뒤 아이를 버려둔 채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을이가 부모도, 국적도 없이 병원에 혼자 남게됐습니다.

사랑받고 자라라는 뜻에서 ‘사랑이’라고 불렀어요

그동안 가을이의 치료비와 수술비를 부담해온 건 고려대 안산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기에게는 먹을 것과 기저귀도 필요했습니다. 병원의 소아과 중환자실 소속 의료진은 돈을 모아 가을이에게 필요한 기저귀와 특수 분유 등을 마련했습니다.

고려대 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소속 신지혜(28) 간호사는 지난 11일 국민일보에 가을이를 처음 만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워낙 미숙아였기에 피부도 다 형성되지 않은 채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가을이는 한눈에 뼈밖에 안 보였을 정도로 정말 작은 아이였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든지 앞으로는 사랑 받고 크라고 사랑이라고 불렀어요. 그렇게 부르다 보니 아기도 인지했는지 부를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반응을 보이더라. 이후 8개월을 함께하다 보니 내 자식 같은 애틋함이 생겼어요. 이제 갓 세상에 눈떴을 뿐인데 사랑이에게는 그간 아프고 힘든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사랑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라면 기꺼이 돕고 싶어요. 이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보호시설의 ‘해피 바이러스’

생후 10개월이 다 돼가는 가을이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해 지난달 중순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퇴원한 뒤 안산시와 안산시 외국인 주민 상담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아동 전문 보호기관인 사단법인 ‘아이들세상 함박웃음’에서 위탁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위탁 보호를 받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워낙 작고 약한 아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을이를 돌보고 있는 오창종 아이들세상 함박웃음 대표는 “(가을이를) 처음 병원에서 봤을 당시 아기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기를 돌볼 아동시설을 찾기 어려웠다고 들었다”며 “우리 시설에도 연락이 왔는데 가을이를 하번 보고 나니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방긋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결국 가을이를 데려왔다”고 말했습니다.

오 대표 말에 따르면 처음 시설에 입소할 무렵 가을이는 얼굴도 새까맣고 건강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몸무게는 정상 체중에 한참 못 미치지는 수준이어서 생후 3~4개월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가을이는 이제 우유도 잘 먹고 잘 크고 있습니다. 몸무게는 6.2kg까지 늘었고, 보행기를 이용해 걷기 연습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 대표는 “가을이 모습이 아른거려서 보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며 “가을이가 시설의 ‘해피 바이러스’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수술·국적취득…가을이 앞에 놓인 일들

안산시 외국인 주민 상담 지원센터가 입주한 안산시 다문화 지원본부. 안산시 외국인 주민 상담 지원센터 제공

현재 고대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가을이는 앞으로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행히 수술비용은 TS트릴리온이라는 기업에서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가을이에게 시급한 건 국적 취득입니다. 신생아들이 맞아야 하는 각종 무료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서도, 언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국적 취득이 꼭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안산시 외국인 주민 상담 지원센터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원센터는 가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기록을 토대로 친모 소재 파악에 나서 국내에 아이의 외조부모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친모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외조부모는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현재 외교부 등을 통해 친모에게 한국에 입국해 아기의 국적 취득절차를 진행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 증명서를 중국으로 보내 중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원센터 관계자는 “가을이를 포함해 현재 무국적 아이가 국적 신고를 한 경우가 3건 있다”며 “그중 한 명은 국적을 취득해 한국 체류에 성공했다. 가을이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도 가을이가 헤쳐나가야 하는 과제는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도와주려는 지역의 여러 단체와 기업, 이웃을 보면 밝은 미래를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국적을 초월한 인류애 덕분에 오늘도 한 생명이 세상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