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은 또 한 번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12일(현지시간)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과반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획득하며 압승했다. ‘브렉시트 완수’를 내건 보수당의 승리로2016년 국민투표 이후 세 차례나 연기된 브렉시트는 내년 초 단행될 전망이다.
보수당은 이날 오전 9시10분 기준으로, 총선에서 364석을 획득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전체 하원의석 650석의 과반(326석)을 훌쩍 넘으면서 브렉시트 합의안 처리가 확실시 된다. 총선 이전보다 66석을 더 가져갔다. 지난 3년6개월간 브렉시트 정국이 이어지면서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이 보수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1야당인 노동당은 이전보다 42석 줄어든 203석만 얻었다. 1935년 이후 최악의 패배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는 48석을 획득하며 제3당 입지를 굳혔다. 2017년 총선 당시 보수당은 317석, 노동당 262석, SNP는 35석이었다.
이번 총선은 일찌감치 ‘브렉시트 총선’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브렉시트 강경파인 보리스 존슨 총리는 번번이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에서 가로막히자 조기총선 카드를 꺼냈다.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한 뒤 자력으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때문에 총선 최대 관심사도 보수당의 과반 확보여부였다.
그는 “보수당은 브렉시트 완수를 위한 권한을 쥐게 됐다”며 “모든 지지자와 자원봉사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감사하다. 영국은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수당이 완승을 거두면서 영국은 예정대로 내년 1월 31일 EU를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브렉시트 예정일은 지난 3월 29일이었지만, 브렉시트 방법을 두고 내부 갈등이 이어지면서 4월 12일, 10월 31일, 내년 1월 31일로 3차례나 연기됐다. 존슨 총리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당내 총선 후보들에게서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한다는 서명을 받아뒀다. 앞서 보수당 내에서조차 반란표가 대거 나와 하원 통과에 실패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EU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보수당이 과반을 획득해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며 “영국 의회가 수정 법안을 받아들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보수당에 축하를 전하며 “영국의 EU 탈퇴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영국이 1월 31일 바로 EU를 탈퇴하는 것은 아니다. 양측은 브렉시트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2020년 말까지 ‘이행기간’을 설정했다. 이 기간 양측은 기존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기반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 무역협정 등 EU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의회 비준도 받아야 하므로 실제로 브렉시트가 완료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은 시간이 11개월뿐이어서 2021년까지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매우 분명한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탈퇴 분리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미”라며 “영국과의 FTA를 합의하기 위한 11개월이 남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이행기간은 영국 정부가 2020년 7월 1일까지 EU에 연장 요청을 하고, EU가 동의할 때 1회에 한해 1~2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까지 감수하며 브렉시트를 강경하게 밀어붙여온 존슨 총리가 연장을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기간에 영국이 EU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FTA를 타결하지 못하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따라 교역해야 한다.
한편 존슨 총리는 총선 승리로 정치적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성과도 거뒀다. 그는 테리사 메이 전 총 사퇴 이후 보수당 경선으로 총리직을 물려받은 탓에 ‘국민의 선택’이라는 정당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도한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둬 정치적 동력을 확보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