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국내 1위 배달앱이 된 ‘배달의민족’이 독일 자본과 손잡고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 국내 스타트업이 시장규모가 작고 경쟁이 치열해 성장 한계가 빨리 오는 한국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와 손을 잡게 된 것은 아시아 시장 진출을 두고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배달의민족은 한국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자본력을 갖춘 대형 IT 업체들이 잇따라 배달 시장에 참전하면서 경쟁 환경이 점차 녹록지 않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국내 배달앱 시장은 배달의민족 외에 딜리버리히어로가 운영하는 요기요, 배달통 등이 1~3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쿠팡이츠, 우버이츠 등도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딜리버리히어로는 유럽, 아시아 등지에 40개의 자회사를 운영 중이다. 한국 시장에도 요기요, 배달통 등을 인수하며 진출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배달앱이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이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것은 한국 시장보다는 배달의민족의 성공 노하우를 가지고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을 50대 50 비율로 싱가포르에 조인트벤처 ‘우아DH아시아’를 설립기로 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우아DH아시아 회장을 맡아 베트남,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등 11개국 사업의 경영을 맡는다. 향후 아시아시장에서 신규 배달앱 사업을 시작할 때는 ‘배민’ 또는 배달의민족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DH 본사에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 3인 회의에 멤버로 참여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투자자들이 보유한 우아한형제들 지분 87%를 인수키로 했다. 김 대표가 보유한 개인 지분 13%는 추후에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만큼 조인트벤처 등에 들어가는 투자비용은 사실상 딜리버리히어로의 몫이 되는 셈이다. 대신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 노하우를 가지고 아시아시장 공략의 선봉장이 된다. 딜리버리히어로 측은 “아시아 시장은 배달앱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업계 1위라는 성공을 이룬 김봉진 대표가 아시아 전역에서 경영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는 국내 스타트업에게 회사 성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국내 스타트업은 좁은 시장, 치열한 경쟁, 대기업의 시장 참여 등으로 일정 시간 이후에는 성장이 어려워 회사를 매각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우아한형제들도 표면적으로는 외국 자본에 회사를 매각한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외국 자본을 업고 해외 무대에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최근 스타트업들이 시작 단계부터 국내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벌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 자본과의 적극적인 협력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IT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게 IT업계의 현실”이라며 “이 같은 위기감이 글로벌 연합군 결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 인수 이후에도 배민, 요기요 등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배민, 요기요, 배달통의 경쟁 체제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면서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로 각각 발전시킬 계획이다. 현재 이베이가 G마켓과 옥션을 모두 보유하면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