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키코 피해기업 손 들어줬지만… 은행들 수용 ‘불투명’

입력 2019-12-13 10:53 수정 2019-12-13 10:59
신한 150억, 우리 42억 등 6개 은행 배상 결정
은행 “피해기업 민법 상 손해배상 소멸시효 지나”


금융감독원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 재조사 1년 5개월 만에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배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금감원 결정은 조정 역할에 그쳐 강제성이 없고 은행과 피해기업 양측이 모두 수용해야 효력을 갖는다. 은행들은 금감원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수용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금감원 키코 상품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13일 신한은행 등 6개 은행이 피해 기업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을 각각 배상하도록 했다. 키코 피해기업 중에서는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4개사가 조정에 참여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기업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 등락폭이 일정 선을 넘으면 미리 정한 환율과 실제 환율 간 차액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하는 구조다. ‘키코 사태’란 2008년 금융위기 때 환율 급등으로 키코에 가입한 많은 중소기업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을 일컫는다.

일부 피해 중소기업들은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은행들의 배상을 요구해왔지만,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계약이 불공정행위 등으로 무효·사기라는 기업들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인정했다.

분조위도 은행들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분조위는 판매 은행들이 계약 체결 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 헤지 계약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를 권유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환율 상승 시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 예상되는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등 은행들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쟁조정 결정은 지난해 7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취임과 동시에 금감원이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나왔다. 2008년 키코 사태가 발생한 지는 11년 만이다.

하지만 은행 측이 분조위의 배상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은행 측은 금감원에 분쟁조정에 참여한 4개 기업은 은행과의 키코 계약을 맺은 시기로부터 10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해기업들의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지났기 때문에 은행의 배상 의무가 소멸됐다는 논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상황에서 배상을 하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올해 안에 금감원 조정안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전망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