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찰기를 잇따라 한반도 상공에 띄우며 대북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에 군사 도발을 하지 말라는 압박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북한의 도발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미국은 지난 7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북한이 액체연료용으로 추정되는 신형 엔진 연소 시험을 한 후 거의 매일 정찰기를 띄우고 있다. 군 소식통은 “미군 정찰위성까지 돌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사실상 실시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미군 정찰기는 매달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비행하는데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항공기 이동을 추적하는 민간 트위터 계정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미 공군의 지상감시정찰기 E-8C ‘조인트 스타스’가 12일 한반도 상공 2만9000피트(8.8㎞)를 비행했다. 조인트 스타스는 고도 9~12㎞ 상공에서 북한의 해안포 진지와 미사일 기지, 병력과 장비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고성능 안테나로 5만㎢ 규모 전장 상황을 감시하는 기능을 갖췄다. 조인트 스타스는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하기 전날인 지난달 27일과 지난 3일에도 한반도 상공에 떴다.
전날에는 첩보위성급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가 경기도와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이 정찰기는 20㎞ 상공에서 30㎝ 크기의 표적을 식별할 수 있다. 한 번 비행하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34시간 동안 정찰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미 공군의 정찰기 RC-135W ‘리벳 조인트’는 지난 9일과 11일에 정찰비행을 했다.
미군이 대북 정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으로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 재개가 가장 골치 아픈 시나리오다. 북한은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도 압박 수위를 높일 만한 카드도 갖고 있다.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발사체를 조립하거나 연료를 주입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압박 효과는 상당하다. 이동식발사대(TEL)를 이동시키며 기습 발사를 할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수중발사대에서 쏠 것 같은 액션을 취할 수도 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밟는 군사 도발을 할 경우 미국이 이를 그대로 지켜볼 가능성은 떨어진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1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해 “미 대륙을 공격하기 위해 고안된 ICBM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대북 제재를 추가하거나 대북 군사 옵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군이 최근 정찰기의 위치식별 장치를 끄지 않으며 일부 정찰 항적을 일부러 노출시키는 상황도 대북 강경 기류와 무관치 않다. 언제든 강력한 대북 압박 전략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