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자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병행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유연성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며 고강도 도발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북한은 미국의 유화 제스처를 이미 여러 차례 묵살한 바 있어 전망은 불투명하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우리는 당시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병행적, 동시적으로 행동을 취할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며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 유연성을 보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크래프트 대사는 “우리는 모든 당사자의 우려를 고려한 균형 잡힌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이달 유엔 안보리 순회의장국인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 우려를 논의하기 위해 안보리 차원의 회의를 소집했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 대응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채택을 주도해왔던 미국은 지난해 북·미 대화 국면이 열린 이후에는 안보리 차원의 대응을 자제해왔다. 당초 미국은 북핵이 아니라 북한 인권을 다루는 안보리 회의를 소집하려 했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인권 문제를 민감히 여기는 북한을 배려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크래프트 대사는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저지르면 안보리 차원에서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이 중대한 도발 행위를 다시 벌일 경우에 안보리는 일치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도발 행위란)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우주발사체 발사 또는 미 본토를 타격하도록 설계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어렵고도 대담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크래프트 대사의 발언은 새롭지는 않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병행적, 동시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비건 대표의 발언은 선(先) 비핵화를 주장하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초강경 발언과 뒤섞이면서 묻혔다. 볼턴 전 보좌관이 경질되고 비건 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되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진용이 재편됐지만 미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는 이미 바닥난 상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이날 안보리 회의 직전 안보리 이사국 대표와 한국·일본의 유엔대사와 오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대표는 현재 한반도 정세가 엄중하다고 평가하며 안보리가 단합된 모습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