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B급’ 코드만 보이지만, 볼수록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나오는 드라마였어요. B급은 양념이었죠.”
백승룡(38) PD는 지난 6일 종영한 ‘쌉니다 천리마마트’(tvN)를 “치유와 성장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백 PD는 “천리마마트가 정과 따뜻함이 녹아있는 판타지적 장소로 느껴지게 공들였다”며 “원작 팬들에게까지 칭찬받는 작품이라 뿌듯했다”고 전했다.
실제 누적 조회 수 11억회에 달하는 동명 인기 웹툰을 각색한 극은 코미디를 가장한 채 휴머니즘을 진득하게 풀어냈다.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된 복동(김병철)이 그룹에 치명상을 주려 벌이는 일들이 ‘대박’을 친다는 황당한 성공담인데, 마트에 취직한 소외된 이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써나가는 과정이 내내 큰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시청률은 2~3%(닐슨코리아)대였지만 평론가와 시청자의 호평만큼은 대단했다. 지상파에 ‘동백꽃 필 무렵’(KBS2)이 있었다면, 케이블엔 천리마마트가 있었던 셈이다.
디테일한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특히 작화를 영상으로 옮겨오면서 발생하는 이질감이 없었다. 주요 장면들을 구현할 때면 기본 10시간가량 심혈을 기울였던 덕분이다. 원작과 높은 캐릭터 싱크로율로 화제 몰이를 했던 캐스팅 비화에서도 이런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원작의 팬이었던 백 PD는 “캐릭터별 시놉시스를 일일이 만들어 연기보단 삶의 궤적과 철학이 비슷한 배우들을 뽑으려 했다”며 “그래서 더 비슷하게 느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작자인 김규삼 작가는 매회가 끝나고 “(이번 편도) 너무 좋았다”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백 PD는 만화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특히 걸출했던 건 노래와 춤을 활용한 뮤지컬 같은 시퀀스였다. 가령 가상의 원주민 캐릭터인 빠야족의 ‘빠야카트송’은 수능 금지곡으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는데, 이런 장면들이 ‘세얼간이’ 등 인도영화 분위기와 비슷해 ‘발리우드식 연출’이라는 평이 돌기도 했다.
풍자성 짙은 원작 메시지를 조심스레 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빠야족의 경우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좌절한 인물들이기에 더더욱 소모적 캐릭터로 활용하지 않고 싶었단다. 백 PD는 “(빠야족을) 사랑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며 “춤과 노래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쉽고 즐겁게 다가갈 방법이라 생각해 구상하게 됐다”고 전했다.
백 PD는 “드라마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예능 출신이다. 지금껏 주로 ‘막돼먹은 영애씨’ ‘SNL’ 등 코미디 성격의 콘텐츠에 몸담았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천리마마트의 재기발랄한 연출의 밑바탕이 됐다.
현장에선 노장 이순재의 도움이 컸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 시트콤을 두루 거친 이순재는 “작은 것으로 웃기려고 해선 안 된다. 현실적인 것과 잘 녹여내야 한다”며 늘 중심을 잡아줬다고 한다. 선배이자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역 신원호 PD가 과거 “보편적인 감각을 키워야 한다”며 그에게 건넨 조언도 이번 작품의 휴머니즘으로 개화한 것 같다고 했다. 천리마마트는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감독 또한 성장을 거듭한 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 웹툰 리메이크 홍수 속 드문 성공을 끌어낸 백 PD가 생각하는 흥행공식은 무엇일까. 그는 “원작에 충실한 것”이라고 짤막이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52시간 근로제도 잘 지키면서 제작진 모두 행복하게 드라마를 끝냈어요. 시즌2요? 당연히 많이들 바라고 있을 거라 믿어요(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