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총수 1년 넘게 수사한 경찰, 횡령 액수도 특정 못했다

입력 2019-12-12 11:31 수정 2019-12-12 20:03
경찰, 13일 효성 총수 일가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 의견 檢 송치…“횡령 액 명확히 특정 못해”
경찰 수사 역량 논란…“기소 할 정도의 수사를 못했다는 것…이게 바로 경찰 수사의 현주소”

경찰이 변호사 선임료 등 소송비용을 회삿돈으로 지출한 혐의로 효성그룹 조석래 명예회장과 아들 조현준 회장을 기소 의견 검찰에 송치하면서 명확한 횡령 액수를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관련 첩보를 수집해 경찰이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기초적인 범죄 사실도 규명하지 못한 것이다. 경찰 수사력에 대한 논란과 함께 검찰에 관련 수사를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문화마당에서 열린 인권영향평가 시행 1주년 경찰청 대국민보고회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6.13. 뉴시스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를 받는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 효성그룹 임원 등을 13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조 명예회장과 아들인 조 회장은 과거 자신들이 피의자였던 여러 형사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료 등 소송비용으로 회삿돈 수십억원을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효성 총수 일가에 대한 비위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관련 자료를 확보한 뒤 이상운 효성 부회장과 그룹 법무팀장 등 관련자를 차례로 소환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경찰은 지난 10월 조 회장을 소환 조사했으며 지난달 14일 서울 성북구 조 명예회장 자택에 수사관들을 보내 방문 조사도 진행 했다.

다만 경찰은 1년이 넘는 수사 기간 끝에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며 범죄 액수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개별 사건 마다 변호사 계약을 한 것이 아니고 여러 건을 한 번에 계약해 횡령 액수 특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횡령 금액이 특정 안 되는 경우가 실제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효성 총수 일가가 변호사를 써 유죄를 받은 사건도, 무죄를 받은 사건도 있다”며 “유죄를 받은 사건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회삿돈을 쓴 게 맞다. 그런데 효성 측은 무죄를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통상 지출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정이 어려운 이유들이 있다”며 “횡령 금액이 구체적으로 특정된 것도 있지만 검찰에서 액수가 또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100억원 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1.17. 뉴시스

경찰이 횡령 액수조차 특정하지 못한 점은 논란이 예상된다. 재벌 총수 일사를 수사하며 혐의 입증과 직결되는 범죄 사실도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횡령 사건을 송치할 때 액수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경우는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검찰의 특수부처럼 경찰 수사 역량이 집중된 곳”이라며 “횡령 액수도 특정하지 못했다면 사실상 기소를 할 정도의 수사를 못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경찰 수사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