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아무 곳에서나 웃는 아이, ‘조커’의 웃음

입력 2019-12-12 11:18

영화 ‘조커’가 한동안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플렉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을 터트려 참지 못하는 바람에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편견에 시달리며 소외된 삶을 산다. 조커의 이런 웃음은 어떤 병일까?

이는 외상에 의한 뇌손상, 뇌졸중, 파킨슨 병, 간질 등의 질병에 동반될 수 있는 ‘감정 실금’이라는 하나의 증상이다. 플렉은 아마도 아동기에 받은 학대로 뇌 손상을 입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앓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등학교 1학년인 K는 아무 곳에서나 웃어버려 부모를 난감하게 만드는 아이이다. 부모는 ‘조커’ 영화를 보고 불안해졌다. 유치원 때는 부모님들, 선생님들이 모두 모인 재롱 잔치 때에 무대에 올라가 히죽히죽 웃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 선생님과 부모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입학한 후에 앞에 나가 발표를 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반 전체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실 때나 야단을 맞을 때도 그러니 난감한 일이었다.

처음엔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했던 선생님도 이젠 ‘선생님을 무시해서 그러는 거라’며 화를 내신다고 한다. 집에서도 그랬다. 엄마나 아빠가 훈계할 때도 웃고 있으니 너무 당황하고 어이없어 같이 웃어버리기도 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주춤거리느라 훈계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적도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부모는 이젠 심하게 화가 나 폭발하게 된다. 혼내보기도 하고 왜 그러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 둘러대는 말만 하였다. 아이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나 싶어, 웃음을 멈추게 하려고 매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그때 뿐 소용이 없었다.

K는 평소 외향적이고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지만 발표를 할 때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수치스럽기도 하고 어떤 감정인지 몰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니 헛웃음을 지으며 감정, 상황을 회피한 거다. 부모는 K가 활달한 아이인지라 이런 아이의 불안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K는 특히 남 앞에서 평가 받는 것에 몹시 민감한 아이였다. 그러니 앞에서 발표를 하는 상황이 몹시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외향적인 아이들이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편이기 때문에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는 것이 내성적인 아이들 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져 더 긴장하게 된다. 이런 아이 마음을 모르는 부모는 아이를 다그치기 쉽다.

아이가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고 야단만 치면 아이는 감정을 표현해봤자 이해 받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표현하지 많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심하게 반항하고 충동적이거나 거친 행동으로 표현 할 수도 있다.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을 물어 볼 때도 ‘왜 그러는지?’ 다그치며 질문한다면 절대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엄마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그 상황에 추측되는 감정을 물어봐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뭐 재미있는 것이 있는 거야? 엄마가 궁금해’ ‘발표하는 것이 떨리고 무서워?’라고. ‘당황하고 겁이 나면 금방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엉뚱하게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 하고 공감해 주면 아이는 다소 편하게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웃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같이 생각 해 볼까?”라고 말해 준다면 아이는 진지한 모드로 감정이 전환되면서 스스로 웃음을 멈추고 주어진 상황을 직면 할 거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