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환받기로 한 미군기지 4곳의 정화비용을 일단 자체 부담하기로 했다. 미군 측이 그동안 ‘오염 정화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탓에 이 문제에 관한 결론이 나지 않아 우리가 먼저 비용을 부담하고 다시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협의를 해도 미군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오염 정화비용을 한국이 떠 안고 일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미군이 그동안 마구 버린 기름과 중금속 등을 정화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약 11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11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국과 제200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장기간 반환이 미뤄져 온 4개의 폐쇄된 미군기지를 즉시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반환된 기지는 강원도 원주의 캠프 이글(2009년 3월 폐쇄)과 캠프 롱(2010년 6월 폐쇄),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2011년 7월 폐쇄), 경기도 동두천의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2011년 10월 폐쇄) 4곳이다.
기지는 돌려받지만 오염물질 정화는 일단 우리 정부가 한다. 미군 기지 4곳의 오염물질 정화 문제는 2010년과 2011년 SOFA 규정에 따른 반환 절차가 시작되면서부터 한·미간 쟁점 사안이었다. 정부는 미군 주둔으로 환경오염이 발생했으니 미군이 정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군은 오염 정화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미군은 오염 정도가 ‘KISE’(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원상회복과 보상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미군이 기지를 반환하면서 정화 비용을 부담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한미는 올해 초부터 환경·법 분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실무단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오염확산 가능성과 개발계획 차질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을 고려해 반환에 합의했다.
기지 4곳의 정화 비용은 캠프 마켓 773억원, 캠프 롱 200억원, 캠프 호비 72억원, 캠프 이글 20억원으로 추산된다. 4곳 기지의 오염은 유류·중금속 등의 오염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평의 캠프 마켓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캠프 마켓과 캠프 롱은 지방자치단체와 이미 매각 협약이 체결돼 오염 정화 작업이 끝나면 해당 지자체로 넘어간다. 캠프 이글은 한국군이 계속 사용할 계획이다. 캠프 호비는 아직 활용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
반환대상 미군기지는 모두 80곳이며 이 가운데 54곳은 이미 반환받았다. 남은 26곳 중 이번에 4곳이 반환되면서 22곳이 추가 반환대상으로 남았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