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트럼프, 뉴스 보고 “한국 거주 미국인 귀국시켜”

입력 2019-12-10 20:26 수정 2019-12-10 20:57

‘좌충우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탓에 미국 행정부가 겪고 있는 난맥상이 또 폭로됐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거친 말폭탄을 쏟아내며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있는 미 민간인들이 본국으로 귀국시키는 소개령을 검토했다는 내용이다. 친(親) 트럼프 언론인 폭스뉴스를 보다 내린 대통령의 즉흥적 결정에 관료들은 패닉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를 놀라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황당한 일화는 CNN방송에서 국가·안보 해설가로 활동하는 피터 버겐이 10일(현지시간) 출간한 ‘트럼프와 장군들: 혼돈의 비용’에 자세히 소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초 평소처럼 폭스뉴스를 시청하다 뜬금없이 국가안보팀에 연락해 “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들이 그 나라에서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뉴스에 출연한 잭 킨 전 육군참모총장이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가족들을 한국에 보내는 일을 중단하고 군인들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즉흥적인 명령을 내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정식 보고체계를 거쳐 올라온 정보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뉴스 보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정상적으로 국가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킨 전 참모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국가안보 고문으로 알려져 있다.

버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명령을 내렸을 때 관료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차 “미국인들을 빼내야 한다”고 명령했다. 백악관 고위 관리는 미국이 전쟁에 돌입할 준비 중이고, 한국 증시는 폭락할 것이라는 그릇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만류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하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담당 부서인 국방부는 혼란에 빠졌지만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 등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하기로 했다. 상황이 유야무야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생각을 단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겐은 “매티스 전 장관이 백악관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여러 사건들 중 하나”라고 책에 썼다.

미국 뿐 아니라 2017년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을 귀환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은 올해 1월 빈센트 브룩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각국 정부가 브룩스 전 사령관에게 직접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수반이 직접 나서 한국에서 자국민을 빼라는 지시를 내린 사례는 트럼프 대통령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미 관계의 개선도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초청하고 개막식 때 남북이 공동입장하는 것을 본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후 북한과 싸우는 대신 김 위원장과의 대화하는 일에 집중했고, 같은 해 3월 김 위원장의 만남 요청에 응했다.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어리숙한 면모도 소개됐다. 그는 지난 2017년 4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북 브리핑을 받던 중 한반도의 밤을 촬영한 위성 사진을 보게 됐다. 밤에도 불빛으로 가득한 중국과 한국 사이 완전히 어둠이 깔린 북한 지역이 보이는 유명한 사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는 북한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저 부분은 바다냐”고 물었다. 어둠이 깔린 지역이 북한이란 것을 알게 된 그는 “서울이 왜 저렇게 북한과 가깝나. 그들은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