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외롭지 않길” 포스트잇이 배웅한 ‘성북구 네 모녀’

입력 2019-12-10 18:05 수정 2019-12-10 18:18
'성북구 네 모녀'의 장례식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한 추모객이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성북구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네 모녀의 장례식이 10일 오전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시신이 발견된 지 37일 만이다.

이날 장례식은 숨진 이들의 장례를 맡을 유가족이 없어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라 무연고자에 대한 공영 장례로 구청이 치렀다. 상주 역할은 구청 직원과 성북동 주민이 맡았으며 ‘성북 네 모녀 추모 위원회’ 관계자, 구청 직원 등 30여명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고인들의 친인척은 이날 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고인들 중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에게 연락했지만 ‘여건이 어려워 참석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조문객들이 10일 오전 서울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성북구 네 모녀 무연고 장례에서 분향을 마친 뒤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장례식장 한쪽에는 조문객들이 포스트잇에 쓴 추모 메시지 30여장을 붙여놓았다. 포스트잇에는 ‘더는 외롭지 않고, 더는 마음 아파할 일 없는 평안한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도합니다’ ‘가난이 죄책감이 되지 않기를. 그곳에서라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최돈순 신부는 조사에서 “평생을 외롭게 살다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외로운 죽음에 가슴이 아프다”며 “살아가는 것도 걱정이지만, 이제는 죽음마저 걱정이 돼버린 우리들의 삶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봤을 당신을 외롭게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다”며 “고인이 걸어온 긴 외로움의 여정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그리고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 가야 하는 여행길은 덜 외로웠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육영 성북동주민자치회장은 “고인들은 3년 전쯤 성북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후로 이웃과 왕래가 적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들과 마주칠 때 목례만 하는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썼으면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며 “성북동에 1만7000여명이 거주하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하며 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이 10일 오전 강북구 서울좋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네 모녀의 빈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로 성북구청장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이 구청장은 “저희 몫 다하지 못해 고인들에게 죄송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취약한 사각지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숙제를 남겨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도시가스 검침원들과 업무협약을 맺어 취약가구를 점검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네 모녀의 시신은 이날 오후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흥화원에서 화장된 후 파주시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네 모녀는 70대 엄마와 40대 딸 3명으로 지난 11월 초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들의 시신은 오랜 기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됐으며 부검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추정된다는 구두소견이 나왔다. 집 우편함에 채무 이행 통지서 등이 여러 통 있었던 게 발견돼 생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시민들은 추모위원회를 만들고 시민 분향소를 차리며 복지제도의 전면 개선을 촉구했다.

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