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둘러싼 교전을 5년 만에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반군 간 내전이 벌어져 사망자만 1만3000여명을 냈다. 양측은 각자 교전 중 사로잡은 상대편 포로도 교환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반군 장악 지역의 통제권을 포함한 핵심 쟁점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내전 해결을 위한 ‘노르망디 형식’ 4자 정상회의를 갖고 전면 휴전을 합의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는 201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우크라이나 내전 해결 방안을 의제로 한 정상회동을 가진 이래 4자 협의체를 ‘노르망디 형식’으로 불러왔다.
4개국 정상은 회담 후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올해 말까지 돈바스 지역 내 교전을 전면 중단하고 교전 중 억류된 인사들을 석방하기로 했다. 또 내년 3월까지 우크라이나 내 지역 3곳에서 군 병력을 철수한다고도 했지만 어느 지역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반군 지역 내에서 언제 지방선거를 치를 것인지, 반군 장악 지역의 통제권은 어디에 귀속하는지 등 핵심 쟁점에서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를 얻기 위해 영토를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전의 발단은 2013년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촉구하는 ‘유로마이단’ 시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친러 정책을 추진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이듬해 물러나고 반러, 친EU를 표방하는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는 러시아의 직접 개입을 초래했다.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돈바스 지역에서는 친러 세력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정부군과 내전을 벌여왔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와의 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대화를 제안해왔다. 여기에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중재 노력을 보태면서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동이 전격 성사됐다. 다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두 정상은 공개 석상에서 악수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 등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