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 200여명이 비밀 조직의 도움을 받아 대만으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여성단체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성폭력을 당한 사례가 32건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등 시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서 6개월 간 체포된 시위대 수는 6000명에 육박했고, 경찰이 쏜 최루탄은 1만6000발로 집계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월 시위가 시작된 이후 6000명 가량이 체포되고 수백 명이 기소된 가운데 일부 시위자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피해 대거 대만으로 떠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홍콩 시위대가 떠나는 배경에는 재판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란 두려움과 체포 후 성폭행이나 고문과 학대 등에 대한 공포가 깔려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는 시위 참여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만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시위대를 변호해온 한 변호사는 “이들은 벽돌을 던지는 행위로도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면서 “시민들은 홍콩의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현재 홍콩 시위대를 대만으로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비밀 조직도 가동되고 있다. 여기에는 대만의 변호사와 목사, 시민단체, 부유한 기부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홍콩을 떠나려는 시위대에게 비행기 표 비용이나 배편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시위자들을 공항으로 이송하는 자원봉사자들도 활동 중이다.
대만에 거주하는 목사들은 여권을 압수당한 시위대의 교통편을 마련해 대만으로 보낸 뒤 교회 소유 건물 등에 숙소를 마련해 주고 변호사, 의사, 구호단체 및 학교와 연결해 도움을 주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22년째 생활 중인 한 목사는 “중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여러 명의 반체제 인사를 도왔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작전은 없었다”며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성폭력예방협회 등 3개 여성단체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성폭력을 당한 사례를 조사한 결과 67명의 피해 사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여성이 58명이었으며, 피해자의 연령대는 20세부터 29세까지였다. 가해자는 경찰이 32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부 공무원이나 친중파 주민이 28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경찰 등이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성희롱을 했으며, 모욕적이거나 위협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해자가 경찰 등이어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채 피해를 호소할 곳을 찾지 못했다”며 “정부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홍콩 중문대 재학생인 소니아 응은 지난 10월 대학 당국과의 간담회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후 콰이충 경찰서에서 경찰이 자신의 가슴을 치는 등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지난 6월 9일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지 6개월 간 체포된 시위대의 수가 6000 명에 육박하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1만6000발의 최루탄이 발사된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이달 5일까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홍콩 시민의 수는 5980명으로, 이 가운데 학생은 2380명에 달했다. 체포된 사람 중 대학생은 740명이었으며, 18세 미만 미성년자도 940명이 체포됐다. 이들중 최연소자는 11세였으며, 최고령자는 84세였다.
그동안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사한 최루탄은 1만6000발로 하루 평균 약 90발을 발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시위대가 점거해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홍콩 중문대에서는 2300발 이상의 최루탄이 발사됐다.
인권단체인 민간관찰은 “홍콩 경찰은 군사작전과 같은 진압 작전을 펼쳐 적군이 아닌 시민을 상대로 대량의 최루탄을 마구 사용했다”며 “홍콩 정부는 입법회 의원들의 수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최루탄의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