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학살’ 이라크 시위 현장…갈기갈기 쪼개진 군부 탓?

입력 2019-12-08 17:19 수정 2019-12-08 17:23
7일 이라크 바그다드 킬라니 광장에서 시민들이 전날 무장괴한의 무차별 총기난사에 희생당한 이들을 애도하며 촛불을 켜두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흉기를 휘두르고 총기를 난사해 20여명이 숨졌다. 반정부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한 유력 시아파 성직자의 자택도 무인기(드론)의 폭격을 받았다. 기득권층 부패, 만성적 민생난, 이란의 내정 개입 등에 대한 불만으로 지난 10월 초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구심점 없는 당국 탓에 혼돈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 휴일인 6일(현지시간) 오후 8시쯤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무장 괴한들을 태운 픽업트럭 4대가 반정부 시위대가 모여 있는 킬라니 광장에 총성과 함께 들이닥쳤다. AP통신은 7일 이들의 급작스런 무차별 공격에 비무장 시위대 및 현장에 있던 경찰 등을 포함해 25명이 목숨을 잃고 13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주요 외신들은 “한 자리에서만 20여명이 숨졌다”며 이번 공격을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사망자 중에는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민병대 조직원도 다수 포함됐다. 민병대 뿐만 아니라 이라크 의회에서 54명 의원이 속한 최대 계파도 이끌고 있는 사드르는 당초 정부를 지지했으나 시위 사태를 거치며 시위대 지지로 돌아선 인물이다. 사드르의 민병대는 이날 킬라니 광장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경비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근 시위 현장 곳곳에서 시위대를 겨냥한 흉기 테러 등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무장괴한의 공격이 발생한 지 몇 시간 후 남부도시 나자프에 있는 사드르의 자택도 드론의 폭격을 받았다. 마침 이란을 방문 중이었던 사드르는 폭격을 피했다.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가 시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사임했지만 이라크 의회는 아직 후임자를 지명하지 못했다. 쿠르드족 출신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이 임시로 정부 수반 역할을 맡고 있으나 리더십 공백 상태는 심화되고 있다. 특히 누가 치안 당국이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총책임자인지 불분명하다. 이라크 군부 역시 명확한 구심점 없이 국방부, 내무부, 시아파 민병대 ‘대중동원군(PMF)’의 지시를 받는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30개의 무장파벌로 쪼개져 있는 PMF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후원 하에 놓여있었지만 차츰 이라크 보안당국으로 통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세력은 통합 절차 바깥에서 이란 측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세력들이 무력을 사용해 평화 시위를 진압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테러의 배후가 어떤 세력인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다만 치안 당국의 리더십 공백에 시아파 민병대의 분열까지 겹친 상황에서 일부 친(親) 이란 민병대가 반(反) 이란 시위 세력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