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무치 전두환 VS 5·18 사죄 노태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주역이던 두 전직 대통령의 엇갈린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투병 중에도 장남을 광주에 거듭 보내 5·18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힌 데 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회고록 관련 형사재판에 ‘치매’를 이유로 불출석하고 골프 라운딩을 즐겨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는 지난 5일 올 들어 두 번째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지난 8월 5·18민주묘지를 찾은 지 3개월여 만이다. 재헌씨는 5월 희생자들이 안정된 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희생자 유족들과 직접 만났다.
아들 재헌씨를 통한 노씨의 사죄는 권력에 눈멀어 군화로 광주를 짓밟았던 신군부 핵심세력의 ‘참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전 연락없이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한 재헌씨는 “5·18 당시 광주시민과 유가족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말씀하셔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자나깨나 5·18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협력해야 사죄의 진정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앞서 지난 8월23일 광주 운정동 5·18 민주묘지를 찾은 재헌씨는 윤상원, 박관현 열사 등의 묘역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대신해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의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고 적었다. 반면 노씨에 앞서 정권을 잡았던 전 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후안무치한 골프투어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씨는 ‘치매’를 이유로 법정 출석은 거부하면서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골프를 즐겼다. 전씨는 5·18학살 책임을 묻자 “광주학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그동안 5·18관련 국회 청문회나 검찰수사 결과와 동떨어진 답변을 했다. 10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납부하라는 주문에는 “네가 좀 대신 내주라” “너 명함 있냐”고 생뚱맞게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치매’ 논란 속에도 종종 골프장에 모습을 보여왔다. 전씨와 노씨는 5·18을 무력진압한 신군부 주요 지휘부였다. 대통령 권좌를 주고 받기도 했고 5·18 재판에서 법정에 나란히 서기도 했다. 전씨는 퇴임 이후 30년 동안 받아온 핍박과 ‘백담사 769일간’의 사연 등을 담았다며 지난 2017년 4월 회고록을 출간했지만 그로 인해 지금도 법정에서 국민적 심판을 받는 신세다. 노씨는 전립선 암 등으로 자택에서 수년째 투병 중이다.
광주시민들은 “천인공노할 계엄군 만행에 대해 전씨와 노씨가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며 “생전에 용서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