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1377)은 직지심체요절(축약)이다. 그런데 이보다 수십 년 앞서는 시기의 금속 활자본일 가능성이 있는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주에서 제기됐다.
제주 장윤석씨는 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소장한 ‘석가여래행적송’ 상권을 공개했다. 직지(直指)보다 50여 년 빠른 1328년 제작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연구를 촉구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따르면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은 고려 후기 승려 운묵이 불교와 관련한 내용을 776구로 읊은 책이다. 상권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하권에는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과정을 담고 있다.
석가여래행적송 상권은 그동안 사학계에서 소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책은 원판을 고쳐 조선시대에 다시 발간한 개판본 뿐이다.
장씨가 이날 공개한 상권의 서문에는 제작시기가 1328년으로 적혀 있고, 책의 첫머리와 저자 서문에 1330년(대원지순 경년) 이숙기씨가 쓴 서(序)가 있다.
장씨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 이숙기의 서, 종이 재질 등으로 미루어 책은 책자에 나온 기록대로 고려말인 1330년을 전후해 인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권이 발견됐고, 상권의 서문과 하권의 발문이 일치하기 때문에 연대를 밝히기 위한 정확한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하권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하권에는 제작 시기나 제작 주체가 기재되지 않아 규장각은 그동안 발간사항에 대해 미상, 발행 연도는 조선 초기로 판단해왔다.
이날 회견장에 동행한 임홍순 서경대 명예교수는 “하권의 말미에 적힌 ‘천력삼년무진’(天歷三年武辰, 1328년)이란 시기가 장씨가 보관중인 소장본 상권 서문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어 장씨 소장본이 진본이고 규장각 하권과 한 질로 볼 수 있다”며 “석가여래행적송 간행시점을 1328년으로 가정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쇄상태로 보아 목판본으로만 인쇄한 것이 아닐 수 있어 장씨 소장본이 금속활자로 인쇄됐는 지를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가여래행적송의 제작 연대가 1328년이고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면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 보다 50여년 앞선 것이 된다.
장씨는 “조부가 고문서를 모아왔고 최근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물로 지정된 조선 후기 전국 지도책 ‘동여비고’의 소장자이기도 하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